[가출 청소년 어디로 가야 하나] <하> 700명 중 52명만 쉼터 생활…벼랑끝 아이들 검은 유혹에 빠져

  • 조규덕
  • |
  • 입력 2017-05-24   |  발행일 2017-05-24 제7면   |  수정 2017-05-24
20170524
구미시 형곡동 경북도청소년남자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경북에는 가출 청소년이 안전하게 기거할 수 있는 청소년 쉼터가 6곳에 불과하다.

경북에서 한 해 700명이 넘는 가출 청소년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들이 임시로 안전하게 기거할 수 있는 ‘청소년 쉼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거주지 가까운 곳에 쉼터가 없다 보니 입소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먼 거리를 이동해 쉼터의 문을 두드려도 정원이 꽉 차서 헛걸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대구나 서울 등 대도시로 나갔다가 범죄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 갈 곳 없는 청소년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의 돈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히는 경우가 가장 흔한 예이다. 가출 청소년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이른 시일 내에 가정과 학교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청소년 쉼터를 확충하고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정폭력·방임·학대 등 이유로
경북 청소년 매년 700명꼴 가출
‘유일한 버팀목’ 쉼터는 고작 6곳
도내 19개 시·군엔 한곳도 없어
오갈데 없는 아이들 떠돌이생활
절도·폭력 등 범죄 저지르기도

경북도 “지자체 예산으론 한계”
쉼터 종사자 업무 부담도 가중
국가가 인력·재정지원 나서야



◆줄지 않는 가출 청소년

20170524

A군(15·구미시)은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다 지난해 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A군과 A군의 어머니를 때렸고, 거리로 나온 A군은 학교와 가족을 모두 포기했다. 그는 “아버지는 회사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다 풀었다. 결국 어머니도 도망가고 나도 집을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B양(17·김천시)은 친아버지로부터 수년간 성추행을 당해 집을 나왔다. 몇 달간의 길거리 생활이 힘들어진 B양은 집으로 돌아갔으나 아버지가 또다시 추근대는 바람에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집을 나온 청소년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여성가족부는 가출 청소년이 한 해 20만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중 부모의 폭력과 방임, 가정붕괴 등으로 돌아갈 곳 없는 청소년은 12만~14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북지역도 마찬가지다. 23일 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도내 18세 미만 청소년 가출 발생 건수(실종 포함)는 2012년 761건, 2013년 834건, 2014년 817건, 2015년 781건, 지난해 725건으로 해마다 700건이 넘는다. 잦은 가출로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를 고려하면 실제 가출 청소년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출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정불화로 인한 부모와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오갈 데 없는 청소년이 숙식비나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절도 등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 경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2~2016년) 도내 19세 미만 청소년 범죄는 총 1만7천566건으로 매년 3천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유형별로는 절도범죄가 5천286건으로 가장 많고, 폭력범죄(4천838건)와 강력범죄(553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범죄의 적지 않은 수가 가출 청소년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가출 여자 청소년의 경우 성범죄 위험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박상현 구미경찰서 여성청소년팀장은 “부모에게 상처받은 가출 청소년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다른 성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도 큰 어려움을 느낀다”며 “청소년 쉼터 같은 대안시설을 더 늘리고 예산을 더 많이 지원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출 많아도 쉼터 부족

탈북민 자녀 C양(16·구미시)은 지난 2월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마저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의지할 곳이 사라진 C양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집을 나왔다가 며칠 만에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C양은 경찰과의 상담 후 쉼터 입소를 마음먹었다. 하지만 C양은 구미에서 멀리 떨어진 안동의 쉼터로 갈 수밖에 없었다. 구미에 있는 쉼터가 정원이 다 찬 데다 최장 9개월까지만 머물 수 있는 단기 쉼터였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친척 하나 없는 C양의 경우 장기간 보호해 줘야 하는데 구미 인근에는 그런 쉼터가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경북도내 가출 청소년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정작 청소년이 쉴 수 있는 쉼터는 부족한 실정이다. 청소년 쉼터는 전국적으로 총 119개소가 있다. 이 가운데 경북은 구미 2개소, 포항 2개소, 안동 1개소, 울진 1개소 등 총 6곳이 운영되고 있다. 나머지 19개 시·군에는 청소년 쉼터가 아예 없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하는 실정이다.

시설별 정원도 7~12명에 그쳐 전체 정원이 52명에 불과하다. 도내에 한 해 700여명의 가출 청소년이 발생하는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쉼터가 일시(최장 7일), 단기(최장 9개월), 중장기(최장 4년)로 나뉘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집 나온 청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많지가 않다. 가출 청소년이 비교적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중장기 쉼터는 포항에 남·여 각각 한 곳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쉼돌이’와 ‘쉼순이’가 양성되고 있다. 단기간 쉼터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청소년을 가리키는 은어다. 이런 떠돌이 생활을 길게는 6년까지 하는 청소년도 있다. 물론 돌아갈 온전한 가정이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북도내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정해진 규칙 때문에 쉼터 입소를 꺼리는 청소년도 있지만, 부모의 폭행 등으로 도망쳐 나왔거나 정말 쉴 곳이 필요한 청소년도 상당히 많다”면서 “제도권 밖에 있는 아이를 제도권 안으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행정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쉼터 국가예산 늘려야

청소년 쉼터 상당수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인력과 예산 부족이다. 구미 형곡동에 위치한 경북도청소년남자쉼터는 경북도가 운영하는 곳으로 최장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 단기 쉼터다. 현재 12명이 생활하고 있다. 청소년이 쉼터에 올 때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정집을 개조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쉼터’라는 간판도 없다. 이곳 쉼터의 인력은 관리소장 1명, 보호상담원 2명, 행정원 1명, 조리사 1명 등 총 5명이다. 하지만 조리사와 행정원을 제외하면 학생을 보호하는 인력은 소장을 포함해서 3명뿐이다.

특히 청소년 쉼터의 특성상 야간 당직을 서면서 청소년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소수의 인원이 그 자리를 채우다 보니 업무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그나마 이곳은 경북도에서 운영하고 있어 다른 쉼터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포항시청소년여자쉼터(직원 3명) 등 다른 곳은 근무환경이 더 열악하다. 경북의 한 청소년 쉼터 소장은 “현장에서 매일 고생하는 직원을 위해 휴가나 연수를 적극적으로 보내고 싶지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정부의 예산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지자체 예산만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청소년 쉼터 예산은 관련법상 국가와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예산 지원에 한계가 있다”면서 “이 때문에 경북도의 경우 별도 예산을 편성해 청소년 쉼터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행히 최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으로 지난 2월부터 청소년 쉼터가 사회복지시설로 편입돼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수당을 신설했다”고 덧붙였다.

박용석 경북도청소년남자쉼터 소장은 “상시적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출 청소년의 일탈을 좌우한다”며 “청소년 쉼터가 가출 청소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버팀목이라고 생각한다면 국가가 재정 지원, 전문인력 확충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구미 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