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이웃집 할머니는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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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4   |  발행일 2017-05-24 제30면   |  수정 2017-05-24
법은 요건 따져야 하지만 개념에 치우쳐서는 곤란
따뜻하고 합리적이어서 법 모르는 이웃 할머니도 납득할 만한 결정이어야
[수요칼럼] “이웃집 할머니는 뭐라고 할까?”

나이 들어 법 공부를 하면서부터 ‘추상적’과 ‘구체적’이라는 말의 뜻을 새삼 곱씹어보게 된다. 두 단어의 일반적인 뜻이야 남들처럼 알고 있었지만, 마흔 넘어 변호사 일을 하면서는 법의 시작과 끝이 그 두 단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법이라는 규범은 추상적인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구체적이다. 두 단어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데, 법적 해결은 양극에 있는 두 단어를 화해시켜야 가능하다.

로스쿨에 다닐 때 민법사례연구를 가르치셨던 교수님이 인용해서 알게 된 Torsten Korber라는 독일 학자가 있다. 민사 사례 문제를 풀 때 이렇게 저렇게 분석해서 구체적 결론을 내고는 그 결론이 정의의 관점에서 수긍할 만한 것인지를 검토해야 하는데, 그 학자는 “우리 할머니는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무어라 하실까?”라고 물어본다고 했다. 할머니로 대표되는 법률 문외한이 그 결론에 대해 “그건 옳다고 할 수 없어”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법적 사고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교수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개념에만 너무 집착하여 포섭이 실질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행해지는 경우’에 그러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법을 공부한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온갖 법적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동원해 사례를 풀되 그 결론에 대해서는 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 검증한다는 것이 신선하면서 설득력 있게 들렸다. 외할머니도 친할머니도 돌아가신 지 오래이기에 나는 ‘우리 할머니’를 ‘이웃집 할머니’로 바꿔 추상적인 법을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는 마지막 비법은 ‘이웃집 할머니’라고 새겼다. 정작 민사 사례 문제를 풀 때는 법률요건을 찾고 대법원 판시를 외우는 데 급급해 비법을 동원할 여력이 없었다. 법조인이 되고 나서야 ‘이웃집 할머니’를 생각할 여유가 생겼고, 최근에는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뉴스를 보면서 ‘이웃집 할머니’를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지만, 세월호 기간제 교사 유족의 순직유족급여청구에 대해 공무원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는 순직 요건 해당 여부를 심사하지 않았다.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이 아니므로 순직유족급여청구 심사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기간제 교사는 교사로 ‘임용’되는 게 아니라 개별 학교 교장과의 ‘계약’을 통해 교사로 일한다.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신분보장이 없고, 공무원연금을 위한 기여금도 내지 않는다. 법률 요건을 조목조목 따지면 인사혁신처의 당초 입장이 맞았다.

그런데 ‘이웃집 할머니’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은 “죽어서도 차별이냐”며 크게 분노했다. 법조인으로서의 나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세월호의 특수성이 있다면 특별법을 제정해 해결해야 할 문제지”라고 했고, ‘내 안의 이웃집 할머니’는 “공무수행 중 의로운 죽음을 당한 건 정식 교사와 똑같은데 왜 차별을 하지?”라고 말해 내 마음도 둘로 갈렸다.

대통령이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을 인정하는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하면서 결론은 난 것 같다. 인사혁신처는 대통령 지시에 대한 후속 조치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을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개정 등의 대안으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결론을 내기까지 ‘이웃집 할머니’ 덕분에 ‘개념에만 너무 집착하여 포섭이 실질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되었지만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이제 시작이다. 기존 법의 모순을 따뜻하면서도 합리적인 개념으로 해결하는 추상적인 규범이 제대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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