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먹을거리·입을거리 “옛날 교동은 잊어라”

  • 유승진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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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5   |  발행일 2017-05-25 제21면   |  수정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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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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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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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교동이 맞아?” 최근 대구 중구 교동 일대를 지나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놀란다. 잊힌 구도심으로만 여겨졌던 교동에 젊은 층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동시장은 1951년 6·25전쟁 당시 피란민에 의해 형성된 천막형 시장으로 출발했다. 미군부대 PX에서 나온 군수품 등이 거래되면서 ‘양키 시장’으로 불리다가 ‘도깨비시장’을 거쳐 1971년 지금의 ‘교동시장’이 됐다. 수입품들을 중심으로 전자, 전기, 의류, 음식, 귀금속을 판매하면서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시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컬러TV 보급과 함께 1980년대 최신 전자기기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과 함께 점차 침체돼 한때 100여곳이 넘던 상가는 현재 20여개만이 남게 됐다. 침체를 겪고 있던 교동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3년 전부터 이곳에 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해 현재는 20여개에 이른다. SNS에 올라온 ‘교동’ 관련 게시물도 5만개에 육박한다. 최근 문을 연 가게들은 새로 건물을 짓기보다는 기존 건물이 갖고 있는 빈티지함을 살리면서 개성 강한 인테리어로 가게를 꾸민다. 20~30대를 겨낭한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SNS를 활용한 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3년 전 호프집 ‘디스트릭트’를 시작으로 ‘6모금 라떼’로 유명한 ‘instant kafe’, 직장인들을 위한 밥집 ‘차림’, 미국식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헤어숍 ‘BOSS THE HAIR’, 직수입 의류매장 ‘slumville’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 입을거리 등을 제공하고 있다.

침체된 전자기기 상가서 탈피
개성 강한 인테리어로 무장
20∼30대 겨냥 카페 등 들어서

공정갑 활성화구역상인회장
“젊은이들 즐길 공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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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S THE HAIR

◆미국식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BOSS THE HAIR’

동아아울렛에서 시청을 향해 걷다보면 화려한 조명의 일본식 건물을 볼 수 있다. 2년 전 문을 연 헤어숍 ‘BOSS THE HAIR’다. 이곳은 교동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게다. 화려한 조명으로 밤에도 쉽게 가게를 찾을 수 있고 다른 헤어숍과 다르게 큰 규모를 자랑한다.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강건우 대표(42)가 직접 가게 인테리어를 했다. 미국식 인테리어를 표방하는 가게답게 곳곳에서 1960~70년대 미국 아이템들을 볼 수 있었다. 70년대 코카콜라 상표부터 잭 다니엘까지…. 강 대표의 취향이 인테리어에 그대로 묻어났다. 90년대 학교 앞에서 팔던 군것질거리와 오락기기까지 있어 어른들에게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강 대표는 교동 거리가 어른들의 추억의 문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강 대표는 “지금의 동성로와 달리 이곳은 어른들의 문화, 옛날 문화를 느낄 수 있어 교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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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이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교동의 거리.

◆‘피맥(피자+맥주)’, 자판기 가게로 유명한 ‘Relax053’

교동 거리에서 비주얼로 행인들의 눈길을 끄는 가게가 하나 있다. 벽 가운데 빨간색 자판기가 하나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실제 자판기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출입문이다. 최근 SNS로 ‘피맥’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Relax053’. 편안하게 쇼파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의 ‘Relax’와 대구의 지역번호인 ‘053’을 넣어 가게 이름을 지었다. 개점한 지 한 달만에 SNS에 2천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최근 교동에서 가장 ‘핫한’ 가게로 거듭나고 있다. 메뉴는 간단하다. 수제 맥주와 피자, 일명 ‘피맥’이다. 서울에서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피맥’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인기가 있는데, 대구에선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공동대표 이광진씨(30)와 우민수씨(30)는 “맥주는 원래부터 자신 있었고, 대구에 없는 피맥이라는 아이템을 선점하고 싶어 이곳에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주 고객층은 20대, 특히 여성 고객이 많다. 이곳에서 만난 김은주씨(여·26)는 “SNS를 보고 오게 됐다. 가게 조명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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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림

◆혼밥족을 넘어 교동의 대표 밥집으로 부상하고 있는 ‘차림’

교동 거리에서 ‘전주 옆 밥집’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교동 거리에 식당으로는 셋째로 개업한 ‘차림’. 거리 대부분이 카페, 서양 음식점, 호프집인데 반해 이곳은 한식집이다. 제육 차림(제육볶음), 유자 고불 차림(유자향의 매콤한 돼지 불고기) 등이 대표 메뉴다. 차림의 대표 김채영씨(여·42)는 20~30대 젊은 직장인을 상대로 음식점을 하기 위해 이곳에 가게를 차렸다. 김씨는 “어린 학생들이 많은 동성로보다는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영업하기 위해 이곳에 가게를 오픈했다. 실제로 입소문을 통해 전문직과 프리랜서들이 자주 온다”고 말했다. 교동의 변화도 체감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매달 가게가 1곳씩 생기는 것 같다. 가게들이 많이 생기면서 동시에 유동인구도 1년 전보다 제법 늘어난 것 같다”며 “이곳이 단순히 카페거리가 아니라 특색있는 거리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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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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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DOT

◆문화가 있는 거리를 꿈꾸는 ‘문화장’과 ‘갤러리 DOT’

교동 거리에 음식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공간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달 초 문을 연 ‘문화장’은 노보텔 주차장 뒤편 옛 청수장 여관을 리모델링했다. 5명의 청년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곳은 겉보기엔 카페처럼 보이지만 전시장이면서 작업실이기도 하다. 또한 계절이 바뀌듯 정기적으로 전시를 바꾸는 ‘문화계절 공간카페’를 지향한다. 1층은 카페, 2층은 옛 목욕탕을 콘셉트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커피·차를 마실 수 있는 목욕탕 카페다. 3층은 아틀리에 카페로 4평 남짓의 10개의 공간에 작가·브랜드별로 나눠 다양한 작가들의 특색있는 작품을 전시한다. 문화장의 부관장 잼킴씨는 “글을 쓰고(文), 그림을 그리고 (畵), 꾸밈을 꾸미고(裝)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문화장이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문을 연 ‘갤러리 DOT’의 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점이 찍혀있다. 조형의 기본이 되는 ‘점’처럼 조형의 기본에 충실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권소희 대표는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교동에서 갤러리를 오픈하게 됐다”며 “젊은 감각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상권과 상생 모색

교동 거리에 젊은 층들이 찾아오고 있지만 아직 올드한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존 상인들은 새롭게 부상하는 상권과 상생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공정갑 교동시장 활성화구역상인회 회장은 “5개월 전부터 젊은 상인들이 다양한 가게를 열고 있다. 이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 회장이 밝힌 상생 방안은 문화가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공 회장은 “지금 교동 거리에 운영 중인 야시장을 좀 더 확대할 예정이다. 야시장에 소규모 공연 장소를 만들어 음악·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e-스포츠 경기장도 유치해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글=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사진=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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