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 여고생 “청산에 살어리라다”…대구도 외국인 고교생 시대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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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6 07:25  |  수정 2017-05-26 08:40  |  발행일 2017-05-26 제6면
수성고 다니는 메간·이사벨
“나는 우리 학교의 스타
학교 온 날 카톡친구 30명 생겨”
스승의 날엔 편지로 감동 선사
20170526
대구 수성고 교환학생인 이사벨이 지난 스승의날 교장 선생님께 쓴 감사의 편지.

“처엉산에 살어리라다, 청산에 살어리라다…(이하 생략)” 25일 대구 수성고 2학년 7반 교실. 외국인 교환학생인 이사벨 브루셀라리아(18·미국 플로리다주)·메간 모로양(18·캐나다 퀘벡주)이 어눌한 한국어 발음에도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진지하게 외우고 있었다. 국어수업을 좋아한다는 이사벨은 이어 윤동주의 서시 가운데 마지막 행인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를 읊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So beautiful”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미국 교환학생 재단 ASSE를 통해 한국, 그중에서도 대구의 고교에서 교환학생(청강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성적 채점을 하지 않는 것만 한국 학생과 다를 뿐 한 학기 동안 모든 정규수업에 참여한다. 금발의 여고생이 한국의 인기 아이돌그룹 빅뱅·2NE1·f(x)는 물론 인기 드라마 ‘도깨비’ ‘주군의 태양’ 등을 나열할 땐 한국의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대구에서 학교 다니는 게 너무 즐겁다. 학교에 온 첫날, 카카오톡 친구가 한꺼번에 30명이 생겼다. 나는 우리학교의 스타”라고 환하게 웃었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사상 처음으로 대구지역 고교에 외국인 유학생이 생겼다. 상원고·대구외국어고·수성고에 각각 2명이 교환학생으로 다니고 있다. 이들의 국적은 미국(2명)·독일(2명)·캐나다(2명)다. 오는 2학기에도 4명이, 내년엔 프랑스·미국·에스토니아 등 8명이 추가 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학생들은 대구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수성고의 메간과 이사벨은 얼마 전 스승의 날에 직접 쓴 한국어로 감사편지를 전해 교사들을 감동시켰다. 봄소풍 땐 용인 에버랜드를 찾아 롤러코스터를 타며 친구들과의 우정도 돈독히 다졌다. 특히 대구 생활에 매료돼 계명대 입학을 준비 중인 메간은 “영어시간에 친구들이 구문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인 유학생 수요가 있지만 관련 입학 규정은 미비한 실정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엔 국내 고교의 외국인 유학생 입학은 물론 전·편입학도 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전국 시·도교육청이 해마다 수립하는 고교 입학전형에 관련 규정이 미흡해 일선 고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실제 이사벨과 메간 역시 학교 배정을 받기 위해 ASSE재단 관계자가 일일이 학교를 찾아다녀야 했다. 이들은 결국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교환학생이 될 수 있었다.

ASSE재단 한국지사 관계자는 “한국 고교에서 공부하려는 외국인 교환학생 수요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지만, 막상 이들을 위한 입학 창구가 없다”면서 “글로벌시대인데도 외국인 국내 고교 편·입학 관련 규정이 없고, 일선 학교에서도 안전문제를 우려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 관련 입학허가서 양식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성적 산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안전사고에 대한 대응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일선 교육청에서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 차원의 외국인 전형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고교의 외국인 유학생은 서울 263명·부산 29명 등 전국에 걸쳐 411명이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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