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게가 뭐 별건가? 따뜻한 집서 마음 편하고 즐거우면 그게 휘게지!”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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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6   |  발행일 2017-05-26 제34면   |  수정 2017-05-26
■ 방송인 최현태씨의 휘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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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씨가 집 옥상 텃밭에서 채소를 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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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가 켜진 아늑한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최현태씨.

◆ 소소한 일상이 주는 즐거움

최현태씨의 일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단순해졌다. 그래서일까. 행복은 더 커졌다. 오전 5시에 일어나는 최씨는 50분 정도 감사기도를 한 뒤 정원과 텃밭에 나간다. 식물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보고 잡초를 뽑는 등 이것저것 하다보면 오전이 금세 지나간다. 텃밭에서 따온 채소로 그가 좋아하는 샐러드를 만들어 커피 등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몇 년전 주택을 지을 결심을 한 뒤 인테리어서적을 보고 커피숍 등 예쁜 집에 가면 실용적이면서 멋진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정보를 수시로 메모해 두었지요. 그래서 마당, 텃밭에 심을 식물도 미리 다 정해두었습니다.”

그의 밭에는 3종류의 수국을 비롯해 수련, 석죽, 작약, 아이리스 등이 심겼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옥상에는 루콜라, 상추, 가지, 토마토, 방풍나물, 머위, 고추 등이 자라고 있다.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다 보면 바로 옆집 할머니가 마당에 화분을 손질하러 나오십니다. 제가 채소를 건네주고 할머니는 꽃씨나 모종, 구근(球根)을 제게 주십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요. 이웃 간에 대화를 하고 정을 나누는 것은 아파트생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요. 이런 게 삶의 즐거움 아닐까요.”

이 말 끝에 그는 “얼마전 동네 주민들과 백합데이를 했다. 주위에 정원을 가꾸는 분들이 많은데 백합 피는 날 만나서 백합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행사였다. 주택에 오면서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그분들과의 교류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외출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최씨는 주택살이를 한 뒤 집에서 모임을 자주 갖는다. 친구, 이웃과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신다.

“옥상 텃밭에 여러 종류의 채소들이 있으니 샐러드, 수제비 등을 만들어 같이 식사를 합니다. 요즘처럼 날이 좋을 때는 각자 음식을 한가지씩 준비해와 간단한 포트럭파티도 즐겨요.”

오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로 집 부근에 있는 범어도서관을 가거나 범어숲을 산책한다. 그는 집 바로 옆에 도서관과 숲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며 도시에 살면서 마치 시골에 사는 듯한 여유와 평화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거실이나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툇마루에 앉아서 읽는 재미도 크다. 정원 속에서 풀, 꽃향기를 맡으면 마치 숲속에 온 듯한 착각도 든다.

“어떤 이들은 이런 저의 생활이 단조롭고 지겨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원을 가꾸고 이웃과 대화를 나누며 사는 이런 소소한 일상이 주는 즐거움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매 순간이 감사할 일이고 하루하루 기쁨이 넘치지요.”

지난해 가을 이사온 뒤 정원에서 하우스콘서트까지 연 그는 한가지 바람이 더 있다고 한다. “가까운 지인 30명을 초대해 하우스콘서트를 열어보니 참가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정원이 있는 주택살이의 매력에 빠져든 이들도 많았지요. 그래서 내친김에 집에 마련해둔 게스트룸에서 템플스테이처럼 북스테이를 해 볼까 합니다. 가족을 초대해 그들과 같이 책을 읽고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미 대기자가 3가족이나 있어 빨리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최씨는 이런 제안을 했다.

“김 기자 가족도 초대할게요. 책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팍팍한 일상에 잠시나마 여유를 줘보시면 어떨지요.”

곧바로 대답은 못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집 게스트룸에 있는 듯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20년前 울산서 대구로 와 아파트생활
작년 주택 이사 후 늘 쫓기던 삶에 여유
마당 정원·옥상 텃밭 일구며 하루 시작
직접 가꾼 채소를 이웃과 나누는 재미

“집이 곧 힐링·소통의 공간이자 쉼터
지난 가을 정원서 하우스콘서트 성황
내친김에 북스테이 행사까지 계획중”



◆지금 사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몇년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한 방송사의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 도민준은 자신이 온 별로 돌아가기 몇 달전 천송이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뒤 이런 말을 했다.

“자꾸 후회가 되어요. 한 번도, 남들과 같은 일상을 살아보지 못한 거요. 소소한 아침과 저녁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한 사람을 좋아하는 진심을 표현해보고 그러는 거. 100년도 못 사는 인간들은 다들 하고 사는, 그래서 사소하다고 비웃었던 그런 것들. 그 작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상의 모든 것들이 이제 와서 하고 싶어져 버렸습니다.”

순간이동을 하고 시간을 멈출 줄도 아는 것은 물론 늙지 않는 삶까지 영위하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우주인 도민준은 100년도 채 못 사는 인간을 부러워하며 이런 말을 한다. 왜일까.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사는 존재이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알기 때문이 아닐까.

2016년 영국의 콜린스 영어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에서 휘게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트렌드분석가인 김용섭씨는 ‘라이프트렌드 2017’에서 “웰빙, 로하스, 힐링이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따지며 ‘잘 살자’를 지향했다면 휘게, 킨포그, 미니멀라이프는 가족, 친구와 함께 ‘일상을 즐겁게 살자’를 지향한다”며 “결론은 다 잘 살자는 것이지만 나만 잘 살자, 잘 먹고 잘 살자, 잘 쉬며 잘 살자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하루하루 소박한 일상을 누리며 잘 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휘게에 대해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느긋하게 함께 어울리는 편안한 친교활동”이라고도 정의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것을 즐기는 따뜻한 분위기이자 일상의 소박함을 즐겁게 누리는 것이다. 휘게는 타인들과의 친교활동을 통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지만 혼자서 일상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까지 포함한다. 정원을 가꾸면서 자연과 소통하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차를 즐기면서 혼자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 등이다.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를 펴낸 행복연구소 CEO 마이크 비킹은 ‘덴마크는 왜 가장 행복할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휘게’에서 찾았다. 그는 휘게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에 대해 “국내총생산으로만 사회수준과 삶의 질을 평가하는 자본주의적 패러다임에 대한 불만이 역으로 터진 것”이라고 분석한 뒤 “덴마크는 물가가 높고 날씨도 궂지만 늘 가장 살기 좋고 행복한 나라로 꼽힌다. 그 이유는 바로 삶의 행복의 기준을 관계, 따스함, 친밀함, 평등함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휘게라이프는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 비킹은 휘게라이프를 위해서는 만끽하는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만끽은 감사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나 그와의 일상적인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여기서 만족을 찾고 즐기라는 것이다.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곧 행복한 삶이다.

그가 제안한 ‘휘겔리한 삶을 위한 10계명’도 주목해 볼 만하다. △분위기=조명을 조금 어둡게 한다 △지금 이 순간=현재에 충실한다, 휴대전화를 끈다 △달콤한 음식=커피, 초콜릿, 쿠키, 케이크, 사탕 등 △평등=나보다는 우리. 지인이나 가족과 함께한다 △감사=만끽하라 △조화=당신이 무엇을 성취했든 뽐내지 않는다 △편안함=휴식을 취한다 △휴전=감정 소모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화목=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관계를 다진다 △보금자리=이곳은 당신의 세계다. 평화롭고 안전한 장소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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