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보안관’ 대호 役 이성민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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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6   |  발행일 2017-05-26 제43면   |  수정 2017-05-26
“비주얼 신경쓰며 연기한 건 처음…베란다서 태닝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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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살아야겠다.” 배우 이성민이 좌우명처럼 가슴에 아로새기고 몇 번이나 되새김질하는 문장이다.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의 크고 작은 배역들을 거쳐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가 되기까지. 이성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인생은 최근 몇 년 사이 그야말로 “판타스틱하게” 변했다. 첫 주연을 맡은 ‘로봇, 소리’가 평단의 극찬에도 불구, 아쉬운 흥행 성적을 낸 건 이성민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당시 이성민은 ‘군도: 민란의 시대’로 인연을 맺은 강동원에게 주연 부담감을 토로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저는 그걸 매번 겪어요”라는 유쾌한 답장이 돌아왔지만, 이성민의 부담감은 줄지 않았다.

영화 ‘보안관’(감독 김형주)은 이 판타스틱하게 변한 이성민에게 전환점이 될 영화다. 부산 기장을 무대로 한 로컬 코미디 영화가 마블 히어로(‘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를 꺾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인 덕분에 이성민은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한 짐 내려놓았다. ‘보안관’은 부산 기장을 무대로,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오지랖 넓은 전직 형사 대호(이성민)가 서울에서 내려온 사업가 종진(조진웅)을 마약왕으로 의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미생’ 등의 작품에서 인간적이고 진중한 연기를 펼친 이성민의 의욕 넘치는 오지랖 연기가 쉴 틈 없이 웃음을 안긴다.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얼굴로 관객과 마주한 그는 대책 없이 웃기고, 작정하고 웃긴다.


코미디영화 첫 도전…부산 기장 무대
동네 보안관 자처 ‘오지랖’ 전직 형사 役
마블 히어로 제압 200만 돌파 흥행 순항
첫 주연 ‘로봇, 소리’흥행실패 후 전환점

“조진웅·김성균·배정남 등 최고 앙상블
진중한 연기서 벗어나 건강한 웃음 선사
섹시한 美중년 변신 위해 5㎏ 폭풍 감량
중년男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담아내”



▶영화 반응이 좋다.

“다들 기대 안 하고 봤는데 의외로 재밌다는 눈치다. 건강한 웃음을 주는 영화다. 단순히 웃기기만 한 코미디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다. 중년 아저씨들의 로망을 이야기하고 풍자도 담고자 했다. 다행히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관객들이 더 공감해준 것 같다.”

▶본격 코미디 장르에 도전한 것은 ‘보안관’이 처음이다.

“시나리오부터 잘 될 것 같았다. (조)진웅이랑 (김)성균이도 한다고 해서 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개봉을 앞두고 나서는 영 불안했다. 첫 주연을 맡은 ‘로봇, 소리’가 평단의 호평에도 흥행에 실패했던 트라우마가 있어 그런지. 다른 점이 있다면 ‘로봇, 소리’ 당시엔 부담감이 컸고 지금은 책임감이 앞선다.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보안관’의 성공 여부에 따라 주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나지 않을까.”

▶그런 책임감이 MBC ‘라디오스타’에 깜짝 출연하게 했나. ‘라디오스타’가 흥행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 건 아니다. 우리의 당초 의도는 (배)정남이를 세상에 알리자는 것이었다. 배정남이라는 놈이 정말 웃기고 진국이다. 나도 나가려고 했는데 다른 영화 촬영 때문에 도저히 스케줄이 안 맞았다. 주연으로서 너무 미안했다. 그러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 출연했는데, 그냥 나가는 건 재미없을 것 같아서 깜짝 등장한 거다. 장시간 녹화에 눈이 시뻘개진 동생을 보니 어찌나 미안하던지.”

▶최근작들이 주로 묵직한 영화였다.

“무거운 영화는 촬영장도 무겁다. ‘보안관’ 촬영장은 즐거웠다. 배우들끼리 앙상블도 좋았고, 서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촬영장에 놀러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편안한 촬영장은 처음이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섹시한 미중년으로 변신했다. 체중 감량에 태닝까지 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모델로 했다.(웃음) 비주얼을 신경 쓰면서 연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몸무게는 5㎏ 정도 뺐다. 식스팩보다 중년 아저씨의 다부진 몸이 목표였다. 기장에 먹을 게 워낙 많아서 후반에 식이요법이 무너지긴 했지만. 태닝은 집에서 베란다에 돗자리 깔아놓고 했다. 온갖 야단과 뭐하는 짓이냐는 잔소리를 들으며 했다. ‘너희들 먹여 살리려고 그런다’라고 응수하며.(웃음)”

▶촬영장에서 좋은 선배로 유명하다. 현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일단 편안했으면 좋겠다. 치열한 건 어느 현장이든 치열할 거고, 배우들이 현장에 편안하게 와서 즐겁게 연기했으면 좋겠다. 영화 ‘보안관’ 현장이 딱 그랬다. 배우, 스태프, 매니저 모두 촬영장이 행복하다고 했다. 감독 혼자 신인이라 잔뜩 긴장하긴 했지만 우린 즐거웠다.”

▶‘보안관’을 통해 중년 남성의 로망을 대리만족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로망인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같은 게 아닐까. 힘내라. 중년은 애매한 경계에 선 나이다. 퇴직을 염두에 두고 노후를 걱정해야 할 나이, 패기를 잃어버린 나이, 매사에 겁이 많은 나이.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나이. ‘보안관’은 아직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같다. 나는 아저씨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제트 스키 면허를 따러 갔으면 좋겠다.”

▶패기를 잃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나.

“있었다. ‘로봇, 소리’ 끝나고 많이. ‘보안관’도 방향을 어떻게 잡을까에 대한 기준점이 될 작품이다. 주연을 맡으면 스트레스도 많고 책임감도 크다. 반면 조연은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적을 수밖에 없다. ‘로봇, 소리’가 잘 안되고 나서 다시는 주연을 안 할 생각이었다. 이 인터뷰 오는 길에 ‘숙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는데, 다시 한 번 해봐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의기소침할 게 아니라 극복해야지. 만약 보안관이 안됐다고 해서 주연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보안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사실 ‘보안관’ 하면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배우들에게 ‘우리는 뭉쳐야해’를 강조했다. 밥도 누가 혼자 떨어져 먹으면 ‘그러지마, 이리 와’라고 투정을 부리는 식이었다. 어쨌든 굉장히 중요한 기로에 있는 작품이고 잘됐으면 좋겠다. 안되면 잠시 한숨 돌리고 앞으로 치고 나가려고 한다.”

▶영화 안팎으로 참 인간적이다.

“그게 내 딜레마이기도 한데, 극적으로 묘사를 잘 못하는 것 같다. 뭐든 평범함으로 끌어내린다고 해야 하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극적이지 못한 게 내 딜레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심하게 극적인 캐릭터, 콘트라스트가 많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내가 가진 평범한 캐릭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더 인간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영화와 달리 실제 딸과는 살가운 부녀지간으로 유명하다.

“그렇긴 한데, 점점 더 제 친구들도 중요하고.(웃음) 딸에게 ‘엄마 아빠보다 친구가 더 중요할 때가 있지’라고 물었더니 대답 안 했다. 신기하게도, 애를 낳아 보니 나랑 닮은 데가 보인다. 나랑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 딸도 나랑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보였다. 내가 가진 약점과 단점이 딸에게서 보일 때 거 참.(웃음)”

▶‘골든타임’ 출연 당시만 해도 딸의 꿈이 의사라고 했다. 지금도 변함없나.

“아니, 요즘엔 글을 쓰겠다고 한다. 초등학생 땐 무슨 꿈을 못 꾸겠나. 연세대, 이화여대 아니면 안 가겠다고 했다. 요즘엔 점점 ‘인 서울이면 된다’라는 얘길 한다.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집에 가면 찬바람이 싹 분다. 딸에게 우리 집이랑 연대랑 가깝다고 농을 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란 눈빛을 쏜다. 으하하. 여하튼 딸과는 사이가 각별하다. 공부문제만 중간에 끼어들지 않으면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배우가 직업이 되면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커졌다는 얘길 했다.

“내가 받는 돈이 커질수록 감당해야 할 일이 커지는 거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감수해야 할 것이니까. (조)우진이가 요즘 드라마(‘도깨비’) 때문에 유명해져서 예능에 나온다. 나랑 (김)성균이도 다 그런 과정을 지나왔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토닥여주게 된다. 성장통이라는 게 있다. 겪어야 낫는 것처럼. 우진이도 그것에 대한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 게 배우로서 짊어질 운명이고, 그걸 감수해야 하는 게 운명이다. 점점 조여오는 책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시민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는 순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배우들이 받는 개런티는 일에 대한 노동도 있지만 ‘이만큼 얼굴이 알려진 것에 대한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책임을 짊어지라’는 비용인 것 같다. 점점 개런티가 늘어날수록 감당해야 할 무게, 책임감, 비난도 덩달아 커진다.”

▶‘미생’으로 함께한 임시완도 같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겠다.

“(임)시완이 잘하고 있다. 20~30대에는 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할 나이다. 계산하면 안된다. 그래야 40~50대 때 편하게 한다. 젊었을 때 눈치 보면 안된다. 나 역시 젊었을 땐 개런티라는 게 없으니까 마음대로 했다. 그땐 지금처럼 겁이 없었다. 시완이도 고민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지금처럼 했으면 좋겠다. 배우로서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었다. 아직 군대도 안 갔다 왔다. 걱정이 있다면, 임시완이 이 무게감을 갖고 30~40대를 어떻게 보낼까 싶다. 난 이제 이 굴레를 끽해야 10년이면 벗어던질 텐데. 시완이는 20년, 그 이상을 더 해야 하는 나이다.”

글=TV리포트 김수정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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