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선택·결정,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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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7   |  발행일 2017-05-27 제16면   |  수정 2017-05-27
병원시스템·가족과 의료진의 갈등…
환자의 평화로운 임종 어렵게 만들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실패의 경험
중환자실에서 본 죽음에 대한 기록
죽음의 선택·결정,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죽음의 선택·결정,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김형숙 지음/ 뜨인돌/ 304쪽/ 1만5천원

도시에 사는 이들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국내 종합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했던 저자는 19년간 이런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문득 의문을 품었다. “지금 우리는 환자에게 이로운 처치를 하고 있는가?”

이 책은 저자가 목격한 잊을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실패한 경험’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의료 사고’를 다룬 것은 아니다. 환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평화롭게 임종하기 어렵게 만드는 병원 시스템과 의사 결정의 관행, 가족 및 의료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지켜본 죽음들을 곱씹어 보면서 지금 우리의 삶이 죽음과 심하게 괴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탄생은 떠들썩하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축하하는데, 어째서 죽음은 서둘러 봉인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렸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어떤 젊은이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고, 어떤 노인은 자신을 보내지 못하는 자식들의 미련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육신을 혹사당했다. 저자는 평범한 이들이 맞은 죽음을 보며, 독자들도 죽음을 생각할 용기를 갖기를 기대한다. 죽음은 당연하지만 ‘그렇게’ 죽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 가본 이들은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렇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그렇다면 언제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가? 필자가 본 환자들 중에는 건강하고 어엿한 개인으로 살다가 갑작스럽게 발병하여 입원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병원에 입원하는 즉시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전락했다. 환자에 대한 중요한 결정에 환자 자신이 배제되는 상황도 빈번했다. 환자가 스스로 치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가족의 결정에 맡기는 일, 가족과 의료진이 환자에게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아 오해와 분노를 품고 세상을 떠나는 일, 중환자실이라는 장소 자체가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환자가 정신증(精神症)을 일으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각자 슬픔과 책임감에 짓눌려 환자를 제대로 보호하거나 대변할 경황이 없었다”고 고백한 저자는 사전의료지시서라는 제도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나마 잘 이별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필자가 고민한 문제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사전의료지시서라는 제도이다. 사전의료지시서는 서면으로 연명치료 여부, 심폐소생술 여부, 시신 처리 방법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의사를 남겨 본인이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의료진과 가족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제도다.

사전의료지시서는 아직 국내에서 법적 효력이 없다. 하지만 환자의 뜻을 보호자와 의료진이 정확히 알고 있느냐와 아니냐의 차이는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전의료지시서의 양식은 매우 다양하다. 책은 의학적 정보를 참고하여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환자들은 기적을 바라지만 의료진은 오늘 없던 치료법이 기적처럼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런데 보호자는 늘 기적을 기다리며 ‘환자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행동한다. 하지만 살고 싶다는 것과 ‘의식도 없고 나아질 가능성도 없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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