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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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9 07:42  |  수정 2017-05-29 07:42  |  발행일 2017-05-29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뇌과학자를 꿈꾼 사람이라면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교수’의 이름을 적어도 한번은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카할 교수는 스페인 출신의 신경조직학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뇌과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염색법을 개발하여 척추동물을 관찰하고 그린 신경계의 조직학적 구조 그림과 관찰내용을 총정리 한 저서 ‘인체 및 척추동물 신경계통의 조직학’은 뇌과학 연구사의 최대 걸작으로, 전세계 신경과학 교육과 연구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계 조직의 미세구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1906년에 이탈리아 조직병리학자인 카밀리오 골지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같은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이 두 석학은 신경계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다른 연구자들이었습니다. 먼저 골지 교수의 경우 신경의 돌기들은 서로 직접 이어져 그물망처럼 연결된 구조라고 주장하는 ‘신경그물설’을 주장하였고, 카할 교수는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독립된 형태·기능 단위라는 ‘신경세포설’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골지 교수는 노벨상 수상기념 강연에서 카할 교수의 ‘신경세포설’을 부정하는 내용의 강연을 했습니다. 이후 후속연구 결과, 결국 골지 교수가 주장하는 ‘신경그물설’은 오류로 밝혀졌고 현재까지 카할 교수가 주장하는 ‘신경세포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신경세포설’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신경세포가 서로 소통하는 ‘시냅스(신경연접)’의 존재가 필수적입니다. 카할 교수가 현재는 고등학교 과학실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현미경을 가지고 염색된 신경조직을 관찰하여 시냅스의 존재를 발견하여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카할 교수의 연구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느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카할 교수는 훌륭한 뇌과학자였으며 또한 정말 훌륭한 멘토였습니다. 1898년 저술한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에게’라는 책은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상하고 구체적인 조언을 담은 지침서입니다. 향기박사는 이 책을 너무 좋아하는데,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구는 ‘각 연구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입니다.

저는 아직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창의성에 대한 조언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또 ‘과학자는 그 자신과 조국에 명예를 가져다주는 열렬한 애국자’란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 카할 교수가 활약하던 시기의 스페인은 과학의 변방이었기에 자국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애국심도 상당히 강조하였는데, 그런 이유로 아직 기초과학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젊은 과학자들도 가슴에 담아둘 만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면밀한 ‘관찰의 시대’가 끝나면 직관적이며 논리적인 ‘해석의 시대’가 열립니다. 따라서 이제는 카할 교수와 같은 훌륭한 뇌연구자들이 한세기가 넘도록 뇌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해석을 하는 시대를 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번 세기는 관찰중심의 생물학 기반 뇌연구에서 해석중심의 수학과 물리학 기반 연구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뇌과학자인 세바스찬 승 교수가 물리학자 출신으로 현재 뇌의 수학적 이론을 연구하여 뇌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대를 앞서가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21세기는 뇌의 신비를 풀기 위한 기초과학 연구가 더 활발해지고, 또 정신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많은 뇌융합기술들이 개발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나라 젊은 학생들이 생물만큼이나 수학과 물리학에 관심을 쏟아 뇌연구 ‘관찰의 시대’를 넘어 ‘해석의 시대’를 선도하는 훌륭한 뇌과학자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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