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쏙쏙 인성 쑥쑥] 군자는 한 가지 구실밖에 못 하는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니다(君子不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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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9 07:45  |  수정 2017-05-29 07:45  |  발행일 2017-05-29 제18면
[고전 쏙쏙 인성 쑥쑥] 군자는 한 가지 구실밖에 못 하는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니다(君子不器)

해인사 소리길을 걷다 보면 북두칠성에 예향 하던 칠성대 바위를 만납니다. 그곳에서 다리를 건너면 인도 작가 쉴타 굽타의 100개의 계단이 나오고, ‘가끔씩 나를 볼 수 있는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철평석의 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칠성대와 글의 의미가 어우러져 마음에 애틋하게 와 닿습니다.

문득 아주 깊은 오지 마을 토담집에 가서 장작불 때어 뜨뜻한 온돌방에 배를 깔고 누워서 창호지 바른 문창살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리저리 뒹굴고 싶은 그 온돌방 구석 보꾹에 곡식을 담았던 성주단지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부터 찰기장이나 메기장이나 상관없이 담아두었던 성주단지라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그 토담집 장독대엔 어머니가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 놓던 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훌륭한 인물 되어라’고 어머니가 칠성님께 빌던 기도 소리를 느끼며 옛날 나를 볼 수 있겠지요.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선생님, 저는 어느 정도의 인물일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너는 그릇이니라” 하였습니다. 자공이 “무슨 그릇입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공자는 “너는 호련(瑚璉)이니라” 하였습니다. 호련(瑚璉)은 종묘 제사에 기장과 피를 담는 제기입니다. 이 그릇을 중국의 하나라에서는 호(瑚)라 하였고 은나라에서는 연(璉)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주나라에서는 보궤를 썼습니다. 고급스럽게 생긴 소중한 그릇입니다. 이곳에 담는 제물은 모두 기장과 피였다고 합니다. 신라 신문왕 때 설총이 지은 화왕계에도 ‘고량다주(膏粱茶酒)’라는 글이 나옵니다. 양(粱)은 기장을 말하고, 다(茶)는 차를 말합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기장과 피를 중요하게 여긴 듯합니다. 차도 신라 때부터 마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하였습니다. ‘군자는 한 가지 구실밖에 못하는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정약용도 형병의 말을 인용하여 ‘배로는 물을 건너고, 수레로는 육지에서 이동한다. 반대로 하면 해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기(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도리를 말합니다. 주역에서도 공자는 ‘화살은 그릇이요, 이를 쏘는 것은 사람이다. 군자는 기(器)를 몸에 감추고 때를 기다려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현명한 사람을 말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결코 한 가지 구실밖에 못하는 그릇 같은 존재일 수 없습니다.

자공은 이름이 단목사이며 공문십철에 포함됩니다. 공자가 환난을 당하였을 때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곁에 없음을 한탄하며 수제자 열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습니다. 그때 ‘언어 제일’ 자공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공은 곧잘 공자와 학문을 논하고 나중에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경에 나오는 자르고, 끊고, 쪼고, 다듬는다는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공자와 논한 제자도 자공이었습니다. 공자가 호련이라 말했지만 자공은 군자입니다. 이른 새벽 정화수를 떠 놓고 북두칠성에 기도하던 어머니의 염원도 자식이 현명한 사람인 군자가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여러모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가 군자불기(君子不器)일 듯합니다. 박동규<전 대구 중리초등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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