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7번째 내가 죽던 날·꿈의 제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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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2   |  발행일 2017-06-02 제42면   |  수정 2017-06-02

7번째 내가 죽던 날
生의 마지막 날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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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이란 말에는 이미 지루함이 묻어난다.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고, 직장 혹은 학교에 가서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것. 사람들은 아무런 기대도 흥분도 없는, 너무 예측 가능한 오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새로운 이벤트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7번째 내가 죽던 날’(감독 라이 루소 영)의 주인공 ‘샘’(조이 도이치)은 심지어 그 반복되는 일과에 완전히 갇혀버리고 만다. 그녀에게 되풀이되는 하루란 매일 돌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그것만큼 절망적이다.


로렌 올리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청소년들의 사랑·우정 담아 색다른 재미 선사
기존 타임루프 영화보다 강한 판타지 성격 눈길



‘큐피드 데이’를 맞아 즐거운 하루를 보내던 샘 일행은 파티에서 평소 왕따를 시키던 소녀와 한바탕 다툼을 벌이고 집에 가던 중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죽음을 맞이했어야 하건만 다음 날 눈을 뜬 샘은 ‘큐피드 데이’ 아침으로 다시 돌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한다. 선택이나 행동을 바꾸면 나비효과처럼 전날과 다른 저녁을 맞이하기는 하지만, 일단 자고 나면 다시 그녀가 죽던 날로 돌아간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화를 내고, 일탈을 해 보고, 반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 봐도 결국 똑같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샘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무기력하게 하루를 맞이하던 그녀는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이 왜 ‘그 날’ 죽지 않았는지, 어떻게 해야 이 하루가 끝날지 서서히 깨닫는다.

‘로렌 올리버’의 동명소설(원제; Before I Fall)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반복되는 시간을 소재로 한 일명 타임 루프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감독 더그 라이만), 일단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도 유사한 설정을 담고 있지만, ‘7번째 내가 죽던 날’과 가장 연대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이프 온리’(감독 길 정거)일 것이다. ‘이프 온리’가 단 한 번의 반복되는 하루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성인 남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귀결되는 데 반해 ‘7번째 내가 죽던 날’은 청소년들이 당면해 있는 친구, 연애, 가족 문제가 고루 담겨 있으며 판타지적 성격이 강하다는 차이는 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알고 난 후 그 하루를 변화시키기 위해 애쓴다는 큰 줄기는 유사하다. 더욱 중요한 공통점은 그들이 결말부에서 공히 자신을 희생하는 용감한 결단을 내린다는 사실이다. 타임 루프 판타지는 태생적으로 오락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이렇듯 종종 진지하고 교훈적인 주제를 남기는데, 이 영화에서는 먼저, 반복되는 하루가 그동안 샘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녀는 새삼 친구 및 가족의 소중함과 그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깨닫고, 잊고 있었던 추억과 잊어버렸던 사람들을 다시 대면하며, 외면했던 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하루를 어제 보다 ‘가치 있게’ 사는 데 목표를 둔다. 나이를 먹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더 나은 하루를 꿈꾸며 조금씩 다르게 빚어 가는 시간 속에 그녀는 점점 성숙해진다.

그래서 ‘7번째 내가 죽던 날’은 우리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반복적 일과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것은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라거나 일상이 있기에 특별한 날도 있다는 단선적 주제를 넘어서 똑같이 보이는 하루를 더 의미있게 만들어갈 수 있는 인간의 주체성 및 의지를 부각시킨다. 반복적 삶의 극단에 놓인 샘이 방황을 끝내고 자신 안의 가장 선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시간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결말은 감동적이다. 너무 뻔해서 지루한 오늘이 아니라 너무 잘 알기에 더 이타적인 하루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야말로 이 영화가 남기고픈 여운일 것이다. (장르: 판타지,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꿈의 제인
불행한 인생에 건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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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아니 마음속을 쉽게 떠나지 않는 캐릭터가 있다. ‘꿈의 제인’(감독 조현훈)에 매료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나 요염한 팜므파탈, 걸출한 액션을 보여주는 특수요원도 아니고, 주인공만큼 분량이 많지도 않은데 자꾸 ‘제인’(구교환)의 눈빛이 아른거리고 대사가 귓가를 맴돈다. 근래 한국 영화에서 이렇게 인상적인 인물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제목 그대로 그녀는 꿈처럼 멋진 인물이고, 꿈속에 등장하는 그리운 사람이며, 누군가가 꾸는 꿈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살가운 데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 ‘소현’(이민지)은 집을 나온 후 가출청소년들의 커뮤니티인 ‘가출팸’을 전전하지만 어느 그룹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녀를 유일하게 받아주던 ‘정호’가 떠난 후 목숨을 끊으려 할 때, 마법처럼 그녀 앞에 제인이 나타난다. 몇몇 청소년들이 모인 제인의 집에서 소현은 그녀의 신비로운 매력과 따뜻한 마음에 이끌리며 잠시 행복을 느낀다. “나는 인생이 엄청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중략) 이런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제인의 가치관은 그녀에게 깊이 각인된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제인과 헤어진 후, 소현은 다시 비정한 가출팸 무리 속에 상처 받고 버려지면서 외롭게 삶과 맞서나간다.


가출소녀 ‘소현’과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의 만남
조현훈 감독, 독특한 스타일·몽환적 영상 오감 자극



소현이 경험하는 가출팸의 생활, 리더를 ‘아빠’, ‘엄마’로 부르며 나름의 대안 가족을 구성해 생존을 도모하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움, 염려, 미안함 등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온다. 기성세대가 그들을 좌절과 불안 속에서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소현이 제인과 맺는 관계는 이런 질문에 도전적으로 다가온다. 성적 소수자로서 소외된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탐구하는 제인이 소현에게는 곧 희망과 위로였기 때문이다.

제인으로 분한 구교환의 얼굴, 동시대의 병리적 현상을 건조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묘사하는 독특한 스타일, 몽환적인 영상이 예리하게 오감을 파고드는 강렬한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0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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