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우리말과 글을 귀히 여기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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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5   |  발행일 2017-06-05 제30면   |  수정 2017-06-05
논리적 문장 안 가르치고
반듯한 글씨 뒷전인 교육
현실 우려스러워
우리말 상당 부분이 한자
知의 세계 가려면 알아야
[아침을 열며] 우리말과 글을 귀히 여기는 교육
박소경 호산대 총장

우연히 일본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쓴 메모지를 보게 됐다. 관광 안내를 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미술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는데, 반듯한 한자들에 전화기 모양의 그림까지 곁들여 참 대견하고 앙증스러웠다. 손자가 공부를 아주 잘하나보다 했더니 그냥 보통이라며 웃었다. 나도 같은 나이의 손자가 있는 터라 찰칵 스마트폰에 담았다. 집에 오자마자 며느리에게 “한자 공부 더 시켜야겠다”며 사진을 전송했다. 이것이 나에겐 생전 처음으로 손주들 교육에 참견해 본 사건이다.

일본은 자기네 말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고 한다. 먼저 2천136자의 한자를 포함한 자기들의 말을 철저히 가르친다고 한다. 토익은 400점을 받아도 대학 가서 공부하고 또 연수 가면 된단다. 나는 그들의 한자 실력이 부럽다. 이제 일본은 전 국민이 세계에서 한자를 가장 잘 아는 민족, 한자는 일본의 글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들은 자기들의 고전을 읽어낼 수가 없다. 간체자를 쓴 지가 100년을 넘겼기 때문이다. 1915년부터 일어난 중국의 백화운동 또는 신문화운동은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구어체 문장을 쓰자는 운동이었다. 문어문은 지식인들이 독점하고, 문맹률은 90%에 달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무리 그렇지만 중국인들은 일본에 빼앗긴 번체자가 아깝지도 않나? 지구상에 알파벳을 쓰는 나라가 많이 있듯이 한민족이 귀히 여기면서 즐겨 쓰면 그 민족의 글이 되는 법이다.

그다음은 손글씨다. 초등학생뿐 아니라 전교 1등을 한다는 고등학생도, 수학 1등 한다는 중학생도 글씨나 숫자가 삐뚤삐뚤하다고 한다. 친한 모임에서 할머니들 모두가 함께 걱정을 했다. 우리 때에는 아무리 배움이 짧아도 정성들여 쓴 각자의 필체가 있었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글씨도 삐뚤한 게 비슷하니, 이렇게나 글씨 쓰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 문장이다. 교육을 받았으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적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논리란 앞뒤가 맞으면 되는 정도를 말한다. 운율까지 따지고 문학적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건 그다음 차원의 문제다. 15세기에 태어난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강조하지 않아도 다 아는 바다. 한글의 구조에는 소리가 문자로 되는 놀라운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언어와 음과 문자를 뛰어넘어 ‘지(知)’의 세계로 가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적으리라 생각한다. 문자로 쓰인 것이 사색이 되고, 생각과 감정이 되고, 사조가 되고,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에도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쓰기’로 시작한 문자는 한 사람 안에서 움직이다가 밖으로 나가 큰 세상을 움직인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일본은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적는다고 했다. 한자로 적는 것이다. 그들은 한자로 적고 화어로 읽는 훈독을 한다. 성적인 말이 욕이 아닌, ‘바보’가 욕인 나라, 또한 독서 국민으로 불리는 나라답지 않은가? 초등학교에 한자 교육을 막은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논어’의 짧은 구절들을 반복해 읽힌다면 인성 교육을 따로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겐 선조들의 한시를 읽게 하면 얼마나 자긍심이 생기겠는가?

누가 무슨 제목의 책을 지었는지 외울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안에 든 내용을 직접 봐야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광범위한 공부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흥미를 돋운다. 선거 전 정치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대학 입시에서의 논술에 반대했다. 분명 마음속으로는 글쓰기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꺼내 본다. 한글 이름 옆 괄호 안에 든 한자 이름. 한자 이름마다에는 훌륭한 뜻이 담겨있다. 호를 몇 개 짓지는 못하더라도 부모가 지어주신 귀한 이름들. 서로가 뜻을 새기면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박소경 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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