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나눔과 균형의 마법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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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5   |  발행일 2017-06-05 제31면   |  수정 2017-06-05
[월요칼럼] 나눔과 균형의 마법
박규완 논설위원

대통령 취임사는 각종 영양소를 농축한 정제(錠劑)에 비유되기도 한다. 재임 동안의 국정 기조와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응축돼 녹아 있는 까닭일 게다. 그래서인지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을 가늠하려면 대통령 취임사부터 꼼꼼히 읽어 봐야 한다는 말이 생경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에선 아포리즘으로도 손색없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문재인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취임사 곳곳에 묻어나는 문 대통령의 ‘분권 철학’에 주목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 5부 요인과의 상견례에서도 “역대 대통령의 불행은 헌법에 정해진 삼권분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분권과 권력의 균형을 강조했다.

박근혜정부는 권력 나누기에 인색했다. 부처 국·과장 인사에도 청와대가 개입했다. 모든 권력은 청와대로 통했다. 국가권력 삼권 중 행정의 지위와 기능이 입법이나 사법보다 상대적으로 강화·확대된 국가를 행정국가라 한다. 청와대의 무소불위는 박근혜정부를 전형적인 행정국가로 만들었다. 권력을 안배하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박근혜 탄핵과 구속으로 귀결됐다.

새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검찰 개혁의 요체도 권력 분산이다. 검찰에 집중된 힘을 경찰과 공수처 등으로 나눠 서로 견제토록 한다는 포석이다. 법관 독립성 제고와 함께 사법부 개혁의 한 축으로 꼽히는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 추진도 이른바 권력 나누기다. 새 정부가 청와대 정책실을 부활하고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상을 강화하면서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경제 조타수가 셋으로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도 경제팀 간 경쟁과 견제를 유도하려는 문 대통령의 분권 철학의 산물로 보고 있다.

정체성이 다른 인재를 등용하고 반대 세력에 선뜻 고위 공직을 내주는 탕평 인사는 나눔의 절정이다. 공화당의 링컨은 자기를 긴 팔 원숭이라고 조롱한 민주당의 스탠턴을 육군장관으로 기용했다. 탕평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권력은 나눴지만 결과는 남북전쟁 승리와 국민통합으로 이어졌다. 코드 인사 논란에 시달린 노무현정부의 실패와는 대조적이다.

문재인정부의 경제기조인 ‘J노믹스’에도 나눔과 균형의 가치가 깔려 있다. 가계소득을 오달지게 늘려 성장에 필요한 소비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투자로 이어져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 선순환을 이뤄내는 게 J노믹스의 지향점이다. 그러자면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고 정규직의 임금을 비정규직과 나눠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쪼그라든 가계 간의 균형을 잡아줘야 함은 물론이다.

지방분권에 숨어 있는 화두도 나눔이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과 나누지 않고는 ‘2할 자치’의 현실을 벗어날 길은 없다. 대통령이 확실한 분권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문재인정부에서 지방분권 및 지방자치 강화는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권력과 재화(財貨), 일자리는 나눠야 커진다. 소득 양극화도, 지방경제 황폐화도 나눠야 치유된다. 하지만 도식적(圖式的) 나눔에만 집착하면 맞추려 했던 과녁을 비켜갈 소지가 있다. 이를테면 경제 조타수가 많아지면 정책 혼선은 물론 업무 중첩에 따른 비효율, 주도권 다툼 등 부작용이 불거질 개연성이 커진다. 근로자 간 소득 및 복지 불균형을 바로 잡아준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제로 정책 또한 그 취지엔 공감한다. 다만 중소기업과 산업현장의 실상을 감안해 융통성을 발휘하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 확보와 공수처 탄생이 또 다른 폐해를 낳지 않을지도 살펴볼 일이다. 나눔과 균형의 마법을 최적화할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미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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