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재호 役 설경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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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9   |  발행일 2017-06-09 제43면   |  수정 2017-06-09
“나 돌아갈래∼” 후 17년…그의 외침에 답한 ‘칸’
20170609

배우 설경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인생은 참 “울화 많은 삶”이다. 200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으로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로 등장한 뒤, ‘오아시스’(2002)와 ‘공공의 적’(2002), 충무로 첫 천만 영화 ‘실미도’(2003)를 거쳐 ‘해운대’(2009), ‘감시자들’(2013) 등 상업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꽉 채웠다. 티켓파워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배우였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은 늘 아쉬움이 남는 설경구였다. 사생활로 인한 악플에 시달려야 했고, 그의 초반 작품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을 찾기 힘들었다. 기획 영화 안에서 제 연기력을 온전히 발휘 못하는 설경구를 보는 것은 본인도, 팬들에게도 고된 일이었다. 스스로도 “기능적으로 연기했던 시기”였단다.

흥행이든 연기든 오랜 슬럼프에 허덕이던 그에게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은 고맙고 반가운 작품이었을 터. ‘불한당’은 범죄조직 1인자를 노리는 재호(설경구)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영화. 기성품 같은 작품이 쏟아지는 충무로에서 활어처럼 통통 튀는 이 작품은 설경구의 본 적 없는 활용법을 제시한다. 섹시하고 매끈하다가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기, 연민을 동시에 드러내는 설경구의 옆모습은 분명 그의 최근작과는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박하사탕’ 이후 ‘불한당’으로 칸 초청
조폭 役에 지금껏 본 적 없는 연기 변신
7분간 기립박수에 오랜 슬럼프도 훌훌

“고민없이 쉽게 연기하던 나 자신이 창피
흔한 걸 흔치않게 만들고 싶단 말에 출연
타고난 친화력의 임시완과 작업도 재미
다음엔 칸 경쟁부문으로 다시 오고 싶어”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도 초청돼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불한당’이지만 감독의 SNS 발언이 논란이 돼 평점테러 등에 시달리며 흥행엔 참패했다. 한국에서 한창 논란이 들끓는 와중에 칸에서의 반응은 역대급이었다. 올해 칸에 초청된 한국영화 가운데 최장 시간인 7분간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외신으로부터 뜨거운 극찬을 받았다.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채운 환호 속에서 설경구는 힘겹게 눈물을 참고 있었다. 논란에 대한 마음고생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감독이 불참한 가운데 받는 기립박수는 그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줬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5월 중순 칸 현지에서 만난 설경구의 얼굴에는 복잡한 심경이 스며있었다.

▶‘박하사탕’ 이후 17년 만의 칸 초청이다.

“‘박하사탕’ 때만 해도 칸이 이렇게 까다로운 곳인지 몰랐다. 17년 만에 오게 될 줄 몰랐다. 그때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이번에 칸에 와서 보고 듣는 것들이 다 처음 겪는 일들이다. 그땐 그저 이창동 감독님만 따라다녔고, 극장도 뤼미에르 대극장이 아니었다. 사실 칸에서 초청작 기자회견할 즈음에 난 미리 알고 있었다. 변성현 감독에게 전화해서 ‘우리 칸 갈 수도 있대. 99%는 갈 것 같은데, 1% 때문에 못 갈 수도 있대’라고 했다. 전화 끊자마자 초청 발표가 났다. 초청작 발표 날에는 확실히 흥분됐다.”

▶기립박수가 정말 오랫동안 나왔다. 기분이 어땠나.

“당연히 좋았다. 레드카펫부터 이곳은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곳이라는 걸 실감했다. 게다가 뤼미에르 대극장에 입장할 때부터 기립박수를 쳤다. 기분이 묘했다. 집행위원장이 이제 나가자는 제스처를 두 번이나 했는데, 그때마다 관객들이 박수 치며 나가는 걸 막았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입장하기 전에 뤼미에르 극장 입구에서 박찬욱 감독이 마중 나왔다. 진하게 포옹까지 해줬는데.

“감독님이 와 계신 줄 몰랐다. 심사위원 일정이 어마어마하게 장난 아니었다. 반가웠고 뭉클했다. 우리 영화가 경쟁작도 아니고, 사실 바쁜 일정 쪼개서 굳이 안와도 되는 영화인데 감사했다. 영화 상영이 끝났는데도 극장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영화 재밌다고 하시던데.”(웃음)

▶국내에서는 여러 안좋은 이슈들이 있어 무거운 마음으로 칸에 왔을 듯하다. 현지에서 호응을 많이 받아서 마음이 조금은 풀렸나.

“글쎄. 칸에 오기 전부터 최대한 즐기고 오자고 우리끼리 얘기했다. (감독이 못 와) 안타깝다. 관객들 호응이 뜨거워 정말 다행이다. 처음엔 걱정했다. 기립박수 시간이 신경 쓰였다. 보통 4분 정도 나온다 했다. ‘옥자’가 기립박수 4분 받았다고 해서 우리는 5분을 목표로 했다(웃음). 다음 날 포토콜 때 칸 집행위원장이 우리한테 와서 ‘현장 분위기 정말 좋았다’고 얘기해주는데,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런지 눈물도 글썽이더라. 애써 눈물 참는 모습이었다.

“에이, 그건 잠을 못 자서 그렇다.(웃음) 만감이 교차한다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섞였다. 2천500석 객석에 들어가 앉았는데 익숙한 기자들 얼굴도 보이고. 반갑고 뭉클했다.”

▶변성현 감독에게 따로 연락했나.

“칸에서 반응 좋았으니 마음 잘 추스르라고 문자 한통 보냈다. 감독이 워낙 힘들어하니까. 뭐, 감독은 알겠다고 그러는데.”(한숨)

▶영화도, 인생도 참 굴곡이 많다.

“울화가 많다. 일도 울화가 많고, 인생도 많고. 그래도 복 받은 거지. 이렇게 칸도 와 보고”.

▶칸에 오기 전에 이창동 감독을 따로 만났다고. 무슨 얘길 나눴나.

“마음이 허해서 찾아갔다. 복잡한 일 생기면 종종 뵙는다. ‘너 술 마시고 싶지’라고 감독님께 먼저 연락이 왔다. 칸 얘기를 했다. 잘 다녀오라고, 박수 길게 많이 받고 오라고.”(웃음)

▶최근작 성적이 부진했다.

“‘루시드 드림’ 끝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하다가는 아웃되겠구나. 결과를 떠나서 내 자신이 창피했다. 마침 ‘루시드 드림’ 막바지에 ‘살인자의 기억법’에 캐스팅됐다. 그 이후가 ‘불한당’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과 만나서 영화 안에서 조금은 늙었으면 좋겠단 얘길 했다. ‘나의 독재자’ 때 이미 특수분장으로 한 번 노인 역할을 해서. 감독이 건조한 모습으로 늙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에 대해 창피한 마음도 들고 간만에 몸을 혹사해보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감독한테 물어봤다. ‘내가 한번 늙어볼게’라고. 내 자신에게 창피했던 시기다. 작품을 임하는 태도나 연기나 모든 면에서 말이다.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를 내가 특색 없이 연기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슬럼프가 찾아온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고민 없이, 쉽게 연기했던 것 같다. 휙 휩쓸려서 말이다. 감정을 너무 기능적으로 쓰며 연기했다. ‘루시드 드림’ 시사회 끝나고 김준성 감독과도 했던 얘기가 우리는 현장에서 대화를 많이 안 나눴다는 거다. 내가 조금 더 작품을 지배했어야 했는데.”

▶변성현 감독은 어땠나.

“감독과 첫 미팅 전에 자료들을 찾아보고 갔는데, 외향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이지 특이했다. 변성현 감독은 말을 돌려서 못하고 실수도 많이 하는데, 나는 굉장히 매력 있게 봤다. 술 마시면서 ‘불한당’은 기시감이 드는 이야기인데 이걸 굳이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흔한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만들고 싶단 말에 확 마음이 열렸다.”

▶임시완과 작업은 어땠나. 실제로도 소년 같고 바르던가.

“걔도 서른이고 남자인데 내면엔 현수 같은 모습이 있을 것이다. 신기한 건, 시완이는 한 번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랑 오랫동안 만나는 것이다. ‘미생’도 모임이 있고, 다들 연락하고 자주 만나더라. 나는 그럴 여력이 없다. 작품할 때야 자주 술 마시지만 작품 끝나면 연락 안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가 또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지내고.(웃음) 시완이는 두루두루 잘 지낸다. 술 마신 새벽이면 그렇게 전화를 한다. 우리 집에도 밤 11시에 와서 술 마시고 새벽에 가고. 타고난 친화력의 소유자다. 기대가 되는 친구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다고.

“어휴. 이제 못 하겠다. 배우도 피 말리며 하고 있는데 감독을 어떻게 하나. 대한민국 감독은 정말 힘든 직업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야 한다. 몰라도 아는 척 해야 하고. 으하하. 아, 변성현 감독은 모르면 모른다고 하더라.”(웃음)

▶칸영화제에 다음엔 경쟁 부문으로 와야 할 것 같다.

“맞다. 영화제는 경쟁이지 경쟁!(웃음) 안 그래도 상영 전에 박찬욱 감독님과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집행위원장이 눈치껏 “너흰 경쟁작 아니니까 어떤 얘기든 편하게 해도 된다”고 했다.”

글=TV리포트 김수정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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