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방산비리 판도라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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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2   |  발행일 2017-06-12 제31면   |  수정 2017-06-12
[월요칼럼] 방산비리 판도라

필자는 1980년대 중반에 자대에 배치되자마자 휴전선 철책 경계근무를 섰다. 요즘은 더 나아졌겠지만, 그 당시 GOP 부대 장병들에도 보상이 주어졌다. 생명수당과 특식 빵(카스텔라)이었다. 이등병 생명수당은 하루 110원이었다. 그래도 감지덕지였다. 당시 3천원 정도였던 이등병 월급만큼 매달 생명수당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30여년 전이라고 해도 몇 천원은 너무 적은 돈이어서, 그보다 특식 빵이 더 간절했다. 그런데 빵은 일주일에 두세 번만 나왔다. 군대 물정 모르던 신병 때는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속으로 ‘주려면 매일 줄 것이지, 나라가 쩨쩨하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라가 쩨쩨한 게 아니었다. 우리 중대의 간부가 빵을 빼돌려 상점에 팔았던 것이다. 당시 이런 ‘배달사고’는 어느 부대에서나 흔한 일상이었던 것 같다. 보급병 출신인 지인들의 생생한 증언과 무용담(?)을 들어보면 쌀, 고기, 기름 등 돈이 되는 것들은 모두 보급 담당 간부와 병들의 먹잇감이 됐다. 예전에 소대 고참이 국방부에서 나오는 정량대로만 먹으면 몸무게가 5㎏ 이상은 더 늘 것이라고 했는데,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물론, 요즘 군대에선 병사들 음식에까지 손대는 치사한 착복 비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군인 월급도 많이 올랐고 보급 체계도 투명화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군(軍)과 그 주변이 국민 눈높이에 맞게 깨끗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방산(防産) 비리가 군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사실 방산 비리는 적확한 용어가 아닐 수도 있다. 비리는 방위산업 전반이 아니라 주로 군수품의 군납과 해외 무기 도입에서 발생하기에 엄밀하게 방위사업 비리라고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용어야 어쨌건 지금까지 드러난 방산 비리는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한다.

군납 비리는 다방면에서 자행됐다. 2011년 군 당국은 군용 USB 저장장치를 무려 95만원이나 주고 사들였다. 당시 시중에선 동일한 성능의 제품이 1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납품 단가 뻥튀기가 세계 기네스북 감이다. 또 방위사업청과 군 간부, 납품업체 간의 검은 거래로 인해 병사들의 식탁에 재활용 반찬과 곰팡이 핀 빵이 오르는 일도 있었다. 전투 용품과 무기에도 군납 비리가 만연했다. 국방부가 납품받는 신형 방탄복은 적의 철갑탄에 맥없이 뚫렸고, 어떤 전투화는 물이 샜다. 또 국내 무자격 업체가 제작해 납품한 대공포가 훈련 중에 두 동강 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몇 해 전에는 1천600억원대에 이르는 통영함 납품 비리도 불거졌는데,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은 끊이지 않는 방산 비리가 ‘생계형 비리’라고 말해 국민의 염장을 지르기도 했다. 한 장관의 이런 인식은 어쩌면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해외 무기도입 비리와 비교하면 군납 비리는 조족지혈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1990년대 율곡사업 사건 이후로 대형 무기도입 비리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전문가들은 방산 비리 금액이 국방예산의 5% 정도라고 한다. 매년 국방비에서 2조원가량이 새나간다는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지금껏 적발된 방산 비리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국방부와 군, 방산업체, 무기중개업 등에 포진한 이른바 ‘군피아’들의 조직력과 은폐술이 상상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문재인정부가 과거 무기도입과 관련된 방산 비리를 파헤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시동은 이미 걸었는데 첫 타깃은 박근혜정부에서 시작된 차세대전투기(FX)사업이 될 것 같다. 2025년까지 총 25조원이나 소요되는 무기도입 사업이지만, 계약 체결 과정 등에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미국 록히드 마틴과의 전투기 구입 계약 때 약속받았던 기술이전이 무산된 배경에 의문이 간다. 현재 감사원이 진행 중인 FX사업 감사가 그동안 안보와 국가기밀이란 미명하에 봉인돼 왔던 방산 비리 판도라를 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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