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마음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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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4 07:50  |  수정 2017-06-14 07:50  |  발행일 2017-06-14 제23면
[문화산책] 마음의 장소
김현진

우리는 늘 ‘어디에 살고 싶은가’를 질문한다. 마치 현실의 공간들이 각자의 꿈과 이상에 못 미치는 것처럼 말이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그의 공간과 감각들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래서 자신의 공간을 꾸미는 일은 나를 보여주고자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현재 자신의 삶과 일 속에서 마음의 장소를 갖고 있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위해서 비싼 돈을 주고 공간과 분위기를 산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번에 드러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은 공간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인의 자제는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그들을 오래도록 아껴왔던 이들에게 둘러싸여 진심으로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인생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며, 국적불명의 궁궐에라도 온 듯 낯설고 들떴던 또 다른 결혼식이 줬던 공허감이 겹쳐졌다. 최근 몇 명의 건축주가 집을 짓는 이유에는 결혼식의 장소라는 의미가 있었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여기서 조촐한 결혼식을 할 테니 앞마당을 비워놓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 집이 다 지어지면 뒤늦은 결혼식을 할 수도 있겠다는 분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의 의식(儀式)들, 탄생과 죽음, 결혼과 독립에 관련된 장소들과 우리의 일상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마음의 공간을 함께 생각했다.

삶의 안정감을 주는 마음의 장소들을 우리는 어떻게 가지게 되는 것일까. 인생이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은 현재와 꿈의 분리, 일과 존재의 분리 때문이다. 그 가운데 공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공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유형의 공간이기도 하고, 가늠할 수 없는 정신의 집합체, 무형의 인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둘의 일치를 위해서 우리의 순수한 이성과 감각을 집결할 영역을 세워 나간다. 그것을 자신이 꿈꾸는 이상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만의 안식처 혹은 우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의 자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 만났던 어느 사서는 자신의 마음의 장소는 책장과 책장 사이라고 했다. 서가가 죽 늘어선 통로 사이의 공간이 바로 자신이 살고, 죽고 싶은 공간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삶에 대해 갖고 있는 경건한 자세와 정신의 고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이렇게 바꿨다. ‘당신은 어디에서 죽고 싶은가’. 누구는 자신의 방이라고 할 것이고, 누구는 무대 위라고 할 것이고, 누구는 자신의 일터라고 할 것이다. 우리 각자의 마음의 장소는 어디인가? 오늘 하루 동안 나를 채우는 공간과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생각해보고 싶은 주제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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