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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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6   |  발행일 2017-06-16 제36면   |  수정 2017-06-16
섬진강 따라 증기기관차는 추억의 속도로 달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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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곡성역. 1933년에 지어졌으며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기차마을의 입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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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기차마을 입구. 곡성천에 옛 교각이 남아 있고 모형 기차가 정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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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곡성역 앞 옛 전라선에는 미카형 증기기관차와 운행을 멈춘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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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공원. 1천여 품종의 장미꽃이 3만7천그루에 달한다.

훌륭하다, 순천방향 17번 국도. 아우토반이 울고 갈 만큼 시원하게 뻗어나가지만 대부분의 차들은 안정된 속도로 달린다. 곡성은 7할이 산이라 했나. 그래서 들은 저리도 곡진할까. 눈앞에 펼쳐진 모든 아름다움이 하나가 되어 빛을 보내온다. 그사이 열을 지어 하늘로 솟구친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상체를 쑥 끌어당긴다. 곡성읍 가는 길, 메타세쿼이아 길 앞에 잠시 선다. 오토바이 탄 사내가 나무 아래서 머리를 빗고 있다. 영화 ‘곡성’에서 주인공 종구가 딸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는 장면을 이 길에서 촬영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1933년 지어진 옛 곡성역이 마을 입구
역 주변엔 60년대 재현 세트장도 그대로
곡성역∼가정역 10㎞ 증기기관차 운행

기찻길 옆 공원 3만7천그루 장미향 아찔
옛 전라선 폐선 활용한 체험시설 산재


◆준비 없는 여행자의 기차마을 도착기

기차마을 네거리에서 시야를 놓치고 곡성로를 따라 점점 한산한 거리로 달려간다. 곡성 장터를 지나고도 한참을 더 가서야 U턴의 필요성을 직감한다. 4차로 곡성로는 한산하고 신호를 무시하는 차도 사람도 없다. 다시 기차마을 네거리에 돌아와서야 곡성천 너머 마을 입구를 발견한다. 천을 가로질러 여전히 남아 있는 옛 기찻길 교각 위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모형 기차가 정차해 있다. 주차장 안내를 따라 들어가 엄청난 규모의 주차장에 선다. 곡성읍에 들어서면 길에서부터 분명 증기기관차의 연기가 저 하늘 속에 봉화처럼 피어올라 길을 안내하리라. 그리고 수만 송이 장미들이 손짓해 부르리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었다. 마을은 입구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닿을 수 있었다.

매표소를 통과하자 돌담과 인도와 차도와 철길이 나란히 쭉 뻗어 있다. 돌담은 높아 그 너머를 알 수 없다. 인도 옆 화분에는 토란이 심어져 있다. 곡성의 특산물이다. 차도는 비어있고 이따금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른 길을 활보한다. 철길에는 오래 전 멈춘 기차가 서 있다. 식당이다. 넓은 창 속에 식사를 하는 연인이 보인다. 기차는 또 펜션이고 화장실이고 수유실이고 매점이다.

돌담 끄트머리에 도달하자 노랫소리가 들린다.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일주문 형식의 개별 문이 열려 있고, 그 속 작은 광장에서 가수 ‘수와진’이 노래를 하고 있다. 여전히 심장병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노래다. 마음을 두고 뜻을 세운 일을 오래 지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랫소리 뒤로 꽃들이 보인다. 장미들이다. 돌담은 장미 공원을 감추고 있었다. 장미의 유혹을 물리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선 기차마을을 기차마을이게 한 옛 곡성역으로 향한다.

◆옛 곡성역의 부활

오래된 기찻길을 위험 없이 건넌다. 레일바이크를 탄 사람들이 느리게 지나가고, 미니 기차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철로에는 퇴역한 미카형 증기기관차와 역시 운행을 멈춘 근사한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고, 2011년에 제작되어 지금은 달리지 않는 구형 레일바이크도 한쪽 철로에 놓여 있다. 오래전 증기기관차의 하얀 증기를 흡흡 들이마셨을 목조 승강장이 까만 얼굴로 철길 가에 서 있고, 거기에는 오늘의 증기기관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승강장 맞은편에 옛 곡성역이 오똑하다. 1933년에 지어진 옛 곡성역은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맞배지붕의 역사와 수하물 창고는 영화촬영 때문에 조금 손을 본 것 외에는 옛 모습 그대로다. 굴뚝의 앙증맞은 합각지붕이 사라지고 전체적인 색이 달라졌을 뿐이다. 옛 곡성역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드라마 ‘경성스캔들’ 등의 촬영장으로 쓰였다. 역 주변에는 1960년대를 재현한 세트장도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 옛 곡성역은 마을의 출입구다. 사람들이 들고 나는 모습이 어쩐지 감격스러워 주책이다.

기차는 언제 올까. 철길 한가운데 서서 발돋움 해본다. 연기를 뿜으며 기적을 울리며 들어올 테지. 3량의 객차에는 에어컨도 나오고, 추억의 먹거리도 판단다. 기차는 여기서부터 가정역까지 10㎞ 정도를 시속 30~40㎞로 달린다. 2007년에 섬진강변을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눈 똥그랗게 뜨고 본 적 있다. 겉모습은 미카형 증기기관차지만 속은 디젤기관차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보기에 두근거렸다. 비둘기호가 사라진 지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생각은 잘 나지 않고 아련하기만 한데 하물며 증기기관차야.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지, 다시 철길을 건넌다.

◆기찻길 옆 장미공원

가수는 여전히 파라솔의 작은 그늘 속에서 노래하고 있다. 광장 옆 전망대에 올라보니 장미정원과 중앙광장이 내려다보인다. 멀리 대형 관람차가 나무들의 우듬지를 훌쩍 뚫고 하늘에 원을 그리며 서있다. 기차마을은 현재의 전라선 옆에 길고 넓게 자리한다. 장미공원 외에도 놀이공원인 드림랜드와 4D 영상관, 요술랜드, 치치뿌뿌 놀이터, 생태학습관, 동물농장 등 다양한 시설들이 산재해 있다.

꽃들에게 간다. 양지의 꽃들은 색과 향이 짙다. 흰 장미와 연하고 연한 분홍 장미조차 짙다. 장미정원의 규모는 4만㎡ 정도다.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정원에 1천4가지 품종의 장미가 3만7천그루에 달한다. 분수대 물줄기가 태양에게 절을 한다. 어린 소녀는 꽃밭에 선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에 마음을 빼앗기고, 어린 소년들은 연못 정자에 걸린 큰 북을 둥둥 울린다. 연인들은 장미 터널에 숨었고, 어른들은 파고라를 차지했다. 꽃밭 옆 전라선에 기차가 지나간다.

살랑거리는 메타세쿼이아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순천 구례방향 17번 국도에 오른다. 섬진강을 따라 달린다. 섬진강 도깨비마을을 지날 즈음 저 앞에서 달려오는 검은 증기기관차를 만난다. 인연이다. 느린 기차는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고, 창에 바짝 다가선 한 얼굴을 보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면서도 그녀가 가는 곳이 궁금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방향으로 간다. 남원 분기점에서 순천완주 고속도로 순천방향으로 가다 서남원 나들목으로 나간다. 순천방향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곡성읍으로 나가면 된다. 국도에서부터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마을 입구는 두 곳이다. 곡성역 네거리에서 기차마을 입구로 들어가면 장미공원 쪽으로 갈 수 있고, 기차마을 네거리에서 기차마을길로 들어가면 옛 곡성역 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는 개인 3천원, 어린이와 노인은 2천500원, 단체는 할인된다. 증기기관차 및 레일바이크는 입장 후 옛 곡성역 옆에서 별도로 발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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