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앞산자락길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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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6   |  발행일 2017-06-16 제37면   |  수정 2017-06-16
축구장 29개 넓이 잣나무 5만 그루…걸음마저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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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산지에 잣나무 5만여그루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잣나무 테라피로 통하는 고산골 잣나무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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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름을 앞산으로 빼앗긴 ‘성불산’ 정상부에서 라이딩 기념 셀카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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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이 올라가는 앞산자락길의 첫인상으로 다가오는 고산골 메타세쿼이아길.

대프리카의 6월은 무덥다. 시민들은 더위를 식히려 팔공산을 즐겨 찾지만, 맘 먹고 달리면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앞산의 손사래를 뿌리칠 수가 없다. 일요일 오후 신천을 거슬러 올라 신천대로를 달렸다. 물 빠진 칠성시장 공영주차장 신천은 암반을 드러내고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공룡발자국 상상놀이마당을 열어놓았다. 동신교, 대봉교, 희망교, 중동교를 지나 상동교 교각 위에 도착해 신호대기를 하다 앞산공원의 관문인 고산골로 향했다.

앞산 등산로에서 최적의 길은 고산골과 큰골 사이의 임도라고 한다. 가서 걸어본 사람들만이 자부할 수 있는 대구명품 앞산자락길의 시작은 새롭게 조성된 메타세쿼이아길. 흙길 위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이 좋은 데를 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산골 메타세쿼이아길 시작부터 감탄
법장사 지나니 끝모를 경사진 시멘트길
1983년 산불후 24㏊ 잣나무 조림지 일품

앞산은 원래 성불산이라는 문헌기록들
“1918년…처음으로 전산으로 표시되어…”
앞산 地名 관련 성불정 안내판 고개 끄덕
하산길 케이블카 자전거요금은 어이없어


앞산. 이 친근하고 만만한 산은 대구시민에게 가보지 않아도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대구에서 살다 보면 헛살아도 한 번은 올라보게 되는 산. 땀 흘려 올라보지 않으면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산. 하루라도 가보지 않으면 아쉬운 산. 그 산을 살리고 싶다!

앞산에 대한 대구시의 설명은 “비슬산의 맥을 따라 그 준령이 대구 도심 앞에까지 이어왔으므로 비슬산 또는 대덕산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1832년에 편찬된 ‘대구읍지’에 의하면 성불산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앞산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대구의 앞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불리던 것이 고유명사로 굳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이다. 자세히 옮겨 적고 보니 약간 혼란스럽다. 앞산이 8골(용두골, 고산골, 강당골, 삼정골, 큰골, 안지랑골, 골안골(무당골), 매자골)로 이루어졌다는 설명은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앞산자락길 라이딩 시작부터 고산골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짧고도 굵은 화룡점정을 찍었다. 앞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10코스 정도 되는데, 현재 표기로 고산골 메타세쿼이아길~공룡공원~법장사~잣나무단지~앞산주상절리~성불정~앞산 헬기장~대덕산성 코스를 밟았다.

길지 않은 메타세쿼이아길에 이어 나오는 공룡공원은 역시 크지 않지만 생태탐방로 조성과 관련해서 적당한 동선상에 배치된 것으로 보였다. 친환경 생태탐방로라는 말을 들으면 MSG를 씹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앞산자락길의 첫인상은 천인공감표였다! 이 길에는 자전거 타는 것을 불허하지는 않으나 제한하는 안내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도 좋았다. 뒤늦게나마 정보를 알려준 인도행 걷기회원에게 감사드리는 마음 깊고도 푸르다.

앞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 법장사 쪽을 탔다. 법장사는 고산골의 유래와 같다. 고산골은 신라 말 후사가 없는 왕이 고산사를 짓고 백일기도를 하여 두 왕자를 얻게 된 뒤 고산골로 불리게 되었다는 불국토설(佛國土說)에서 나온 지명이다. 그 후 고산사는 자식 없는 부녀자들의 기도처가 되었다고 하는데, 임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61년 법장사로 중건하면서 흩어진 석탑의 잔해를 모아 3층탑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법장사는 고산사의 후신인 셈인데 일주문의 편액은 ‘대덕산 법장사’라고 내걸어놓았다.

법장사를 지나고 나니 포장도로가 나왔다. 급경사가 많진 않고 어디서 끝날지 모를 경사진 시멘트길이었다. 비슬산처럼 험한 길은 아니었으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무의미해 끌고 걸었다. 울창한 숲길 위로 떨어지는 땀방울, 온몸을 식혀주는 바람,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했다. 흙길, 돌부리길이 어우러진 산길엔 구간구간 트레킹 안내도와 적절한 긴급구조 안내 표시도 표시지만, 어두워서 가더라도 여럿이 걷고 있어 안전이 담보되는 것 같아 믿음직스러웠다.

정보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만난 잣나무조림지는 1983년 발생한 대형산불로 인하여 소실된 산림 24㏊ 규모에 잣나무 5만여 그루를 심어 숲을 조성한 것인데, 신대구10경에 올려놓아도 손색없을 명품숲길이었다.

잣나무조림 경관을 즐기며 앞으로 앞으로 오르니 화산지형인 주상절리 방향표지가 나왔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상인동1번지 상인동 삼국시대 고분 유적과 성불산의 흔적을 살린 ‘성불정’을 만났다. 앞산 정상부에서 전망 좋은 곳 중의 한 곳인 성불정의 안내판에는 앞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영혼이 깃든 설명을 꾹꾹 눌러써 놓았다. “1918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대구부지도에 처음으로 ‘전산’으로 표시되어 나오는데 전산(前山), 즉 앞산이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발간된 지리지나 지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지명이다.” 이 안내판은 대구 공무원들이 쓴 문장 가운데 백미였고 앞산생태교육장을 넘어 대구역사 현장교육의 화룡점정을 찍고 있었다.

문헌 기록에 의해 밝혀진 앞산의 본래 이름은 성불산이었다. 성불산 기록은 조선 중종 때 이행이 지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6권 경상도편 고적조에 있으며 여기에 성불산고성(成佛山古城)을 “수성현에서 서쪽으로 10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3천51척이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적혀있다. 약 1㎞의 산성이었던 것이다. 1832년에 편찬된 ‘대구읍지(大邱邑誌)’에 의하면 “성불산은 대구부 남쪽 십리 안산으로 비슬산으로부터 비롯한다(成佛山在府南十里官基案山 自琵瑟山來)”고 되어 있고, “비슬산에서 북동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은 청룡지맥이다. 이 청룡지맥이 약 17㎞ 거리에 이르러 빚어 놓은 산이 앞산(658.7m)”이라는 설명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1972년에 발간된 ‘대구·달성지’ 승지편(勝地編)에는 “성불산은 대구의 안산으로 은적, 안일 두 암자가 있으며 옛 성터가 있다”고 적혀 있다.

권영시 비슬산연구소장의 성불산은 가창에서 달비골까지를 이른다. 그는 2016년 영남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성불산을 두고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앞산으로 써 오면서 국립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공식 지도에서조차 이 산의 최고봉을 ‘앞산’으로 표기하였다”고 했다. 그는 다른 기고문에서 “큰 뫼(山)에 솟은 여러 산마루는 봉(峯)이 된다”는 것을 근거로 산성산, 대덕산, 월배산은 성불산의 봉우리일 뿐 각개 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바로잡자면 성불산 대덕봉, 산성봉, 월배봉이라는 말씀이다.

일제 총독부에 의해 영혼 없는 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성불산 이름 복원은 많이 늦었다. ‘빼앗긴 산’ 이름을 부르면 불러도 답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시인의 시) 대구의 앞산인 성불산은 꽃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가 앞산을 성불산이라고 불러줄 때 대구가 성불할 것만 같다. 천천히 서둘렀으면 좋겠다.

세상구경 한참 하고 나서 성불정 길 옆에 있는 참나무에 다가가 V자 형상 가지에 두 팔을 치켜들고 기도를 했다.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아지리다!”

성불정에서 앞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높아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오르는 길이라 하산길이었다. 성불산 주변으로 해 지는 풍경은 이 도시가 태양의 도시임을 뜨겁게 보여주었다. 반달처럼 지는 태양은 반대편 하늘에 달을 띄웠다. 순식간의 변화는 전광석화를 날리고 어두워갔다. 앞산은 산보하듯 올라도 좋으나 밤의 앞산은 야수처럼 차갑게 변하니 배낭 속에 방한복이나 안전장비를 휴대하고 길을 나서는 것이 좋다.

앞산헬기장에서 대덕산성 지나 케이블카가 있는 앞산전망대까지는 1시간여 걸렸다. 몇십 년 만에 타보는 케이블카. 요금을 물으니 “7천500원+자전거 휴대요금 5천500원(소인)”이라고 했다. 고속버스 요금보다 비싼 초단거리 케이블카 요금에 터무니없이 비싼 자전거 휴대비는 앞산자락길 자전거여행 맛을 반감시켰다. 유모차는 공짜 승차가 되는데 자전거에 소인 요금을 물리는 것은 대중교통 권장 추세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운송비 정책으로 보이진 않았다.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앞산순환도로가 시작되는 심신수련장입구 교차로로 향했다. 얼마 전 우연찮게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창작 배경을 “앞산 밑이 청정한 보리밭일 때의 실감”이라고 추억한 고(故) 이상백 박사의 1962년 칼럼을 발굴했다.

자기 이름을 빼앗긴 성불산 아래 삼정골로 ‘아직도 빼앗긴 들’ 밖을 지나 늦은 저녁 먹으러 가는 이 코스는 살아있는 식민지근대여행지였다. ‘앞산 그리메’가 길게 드리워진 그 길은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이었으니, 우리가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인 것이다. 빼앗긴 산과 들을 찾아가는 글루미선데이의 포토바이킹이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상동교 건너 고산골 입구-앞산자락길 메타세쿼이아숲-법장사-잣나무단지-앞산주상절리-성불정-앞산 헬기장-대덕산성-앞산전망대-케이블카 타고 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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