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퀴어 영화’를 아시나요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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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6   |  발행일 2017-06-16 제43면   |  수정 2017-06-28
性소수자에 대한 편견 깨부수는 ‘무지갯빛(동성애를 상징)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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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포스터

오는 24일부터 대구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9회째다. 그래서인지 축제 슬로건도 ‘9회말 역전홈런, 혐오와 차별을 넘겨라!’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퀴어 축제로 서울보다 먼저 열린다.


24일부터 제9회 대구 퀴어문화축제
부대행사 중 퀴어영화제 유독 관심

1995년 시작된 한국의 퀴어영화史
박재호 감독 ‘내일로 흐르는 강’부터
유하의 ‘쌍화점’·박찬욱의 ‘아가씨’
최신작 조현훈 감독 ‘꿈의 제인’까지
퀴어영화란 틀 넘어서려는 노력 눈길



축제를 보름여 앞둔 지난 7일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번 축제를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혐오와 차별, 편견에 맞서 성소수자들이 광장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표현하는 축제”라 정의했다. 또한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과 혐오의 뿌리는 깊다”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성소수자도 함께 인정받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는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가 될 것”이라 밝혔다. 옳은 얘기다. 개인적으로 축제기간에 열리는 부대행사 가운데 퀴어 영화제가 눈에 띄었다.

퀴어 영화(queer cinema)는 동성애자의 권익을 보호하거나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영화를 통칭한다. 원래 퀴어는 ‘이상한’ ‘기분 나쁜’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였으나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빗대어 스스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성소수자(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등)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1980년대 이전에 제작된 퀴어 영화들이 영화 속에서 부정적으로 다뤄온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인간관계가 이성애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였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동성애와 이성애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모든 성적인 관계를 포괄해 성소수자들의 욕망과 에로티시즘, 인종, 계급 차이의 정치학을 얘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흔히 세계 최초의 퀴어 영화는 오스카 와일드(영국의 극작가인 그 역시 1895년 동성애금지법으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으나 지난 1월31일 122년 만에 사면받았다)의 생애를 그린 켄 휴즈 감독의 ‘오스카 와일드의 시련’(1960)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해외에서는 비교적 활발하게 관련 영화들이 자주 제작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여러 이유로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캐롤’ ‘대니쉬 걸’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같은 해외 퀴어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선택을 받으며 국내 영화계에서도 눈에 띄게 제작되고 있다.

먼저 이현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연애담’.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 졸업 작품으로 만든 제작비 1억원이 조금 넘는 작은 영화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되어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개봉까진 어려워 보였다. 이후 먼저 이 영화를 접한 관객들 중심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퀴어 섹션에 ‘연애담’이 상영된다는 소식에 새벽 5시부터 매표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해 2회차 모두 예매 오픈 3분 만에 매진됐다. 개봉이 확정되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응원 페이지가 만들어지며 개봉 일주일 만에 독립영화 흥행스코어인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조현훈 감독의 ‘꿈의 제인’.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상까지 수상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배우 이민지와 구교환의 놀라운 연기와 섬세한 연출은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모두 이끌어냈다. 연출을 맡은 조 감독 역시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이다. 이민지는 ‘응답하라 1988’에서 배우 안재홍과 남다른 ‘케미’를 보이며 앞서 주목받은 바 있고, 연출을 겸하고 있기도 한 구교환은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독보적이고 전무후무한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며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할 배우로 단숨에 올라섰다.

한국 퀴어 영화의 처음은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1995)이다. 아역배우 출신이기도 한 박 감독이 배우 고두심과 강석우를 기용해 만든 데뷔작 ‘1990년 자유부인’ 이후 5년 만에 찍은 두 번째 영화로 한국 극장용 장편영화로는 최초로 동성애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상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후 김태용, 민규동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배우 이병헌과 고(故) 이은주가 연기한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2000), 배우 황정민과 정찬이 연기한 김인식 감독의 ‘로드 무비’(2002), 배우 이준기를 재발견케 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 배우 조인성과 주진모가 연기한 유하 감독의 ‘쌍화점’(2008), 배우 배두나와 김새론이 연기한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2014), 그리고 영국작가 세라 워터스의 장편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해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아가씨’(2016)로 이어져왔다. 이 가운데 ‘로드 무비’는 DVD 출시 당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해외 비평가(토니 레인즈)가 참여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독립영화계에선 활발하게 제작되어온 것이 퀴어 영화다. 수많은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논외로 치더라도, 최근 ‘무뢰한’과 ‘판도라’의 주연을 맡은 바 있는 배우 김남길을 기용해 만든 ‘후회하지 않아’(2006)를 연출한 이송희일 감독은 ‘백야’(2012)와 ‘야간비행’(2014)을 연이어 선보이며 한국 퀴어 영화의 역사를 다져왔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을 연출한 김조광수 감독 역시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친구 사이?’(2009), ‘원 나잇 온리’(2014) 같은 중단편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특히 김조 감독은 장희선 감독의 ‘마이 페어 웨딩’(2014)에 연인 김승환과 함께 출연해 동성결혼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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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퀴어 영화는 오히려 퀴어 영화라는 기존 틀 자체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이를 연대기 순으로 살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그에 앞서 편견을 버리는 일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성별 정체성과 사랑이 존재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말이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컬러풀 대구’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도시가 되면 얼마나 멋질까.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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