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골 마을 덮친 쓰레기폭탄

  •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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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0   |  발행일 2017-06-20 제30면   |  수정 2017-06-20
[취재수첩] 시골 마을 덮친 쓰레기폭탄

“이 마을에서 70년 넘게 살았지만 이처럼 황당한 일은 처음입니다. 불법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공공연한 이들의 행위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천시 지례면 신평1리 원신평마을은 ‘한적하다’는 수식어가 어색할 정도로 외진 마을이다. 9가구에 10여명에 불과한 주민 가운데 가장 젊은 사람은 새마을지도자인 김병열씨(74)다.

이처럼 외진 마을에 느닷없이 ‘쓰레기 폭탄’이 덮쳤다. 얼마 전부터 깊은 밤이나 새벽녘에 대형 트럭(탑차)이 마을에서 100여m 떨어진 계곡을 드나들곤 했지만 주민들은 수도권 등지에서 발생한 각종 폐기물이 마을에 버려지고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다만 중장비로 쓰레기 불법 야적장으로 연결되는 계곡 사이의 길을 넓히는 사람들에게 트럭의 출입 이유와 협곡 사이에 높은 담을 둘러 들여다볼 수도 없는 야적장의 용도를 물어본 적은 있다. 이들은 “건축 자재를 잠시 보관하기 위한 곳이다. 이내 옮겨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야적장에서 뿜어내는 악취는 주민들이 실상을 알게 했다. 높은 담을 비집고 들어간 주민들의 눈에 띈 건 보온재·플라스틱·철·섬유·전자부품 등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각종 폐기물 더미였다. 지난 5월24일의 일이다.

주민들은 “이들이 야적장과 진입로를 닦는 과정에서 산림훼손, 사유지 침범 등의 불법 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공은 김천시로 넘겨졌다. 시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A씨(38)는 당초부터 수도권 등지에서 배출되는 각종 쓰레기를 불법으로 처리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A씨가 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불법 야적장으로 쓸 논과 밭 5천792㎡를 9천만원에 매입하고, 계약금(400만원)과 중도금(600만원)만 원지주에게 지불한 상태에서 쓰레기를 반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름대로 치밀한 영업 방식을 구사한 A씨의 사업 영역은 전국에 걸쳐 있다는 게 김천시의 분석이다. 시 관계자는 “A씨는 전국에 뿌려둔 명함을 통해 처리 의뢰를 받고, 폐기물의 소재지와 가까운 곳에서 운반 차량을 찾아 옮겨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지금까지 24t 트럭(탑차)에 의해 19회에 걸쳐 300t가량의 폐기물이 운반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인천·충북·전북 등 전국 각지의 번호판을 단 차량이 동원됐지만, 주로 수도권에서 배출된 폐기물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상당 부분은 무작정 폐기물 처리비용을 절감하려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일 것”이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그 같은 일이 경북까지 내려갔느냐. 지금까지는 주로 충청지방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놀라더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상황에 따라 김천시가 폐기물 처리를 전담해야 할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폐기물 소각비용만 1억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박현주기자 <경북부/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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