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분권형 개헌이 가능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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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0   |  발행일 2017-06-20 제31면   |  수정 2017-06-20
[CEO 칼럼] 분권형 개헌이 가능하려면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우리나라에서 중앙집권의 역사는 길다. 아니, 한반도에서는 지방분권의 역사 자체가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이 제자리를 잡기 전에 존재한 부족국가들이 있었고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호족세력들이 지방에서 독자적인 근거지를 확보하고 농민들을 지배한 적은 있었지만 이를 지방분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국처럼 각 주가 자기 주도권을 가지면서 동시에 연방정치 체제에 속해 있는 경우나 중세 유럽 또는 일본에서 나타났던 봉건제도의 경험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는 왕조국가의 전통 속에서 모든 권한을 중앙에 집중한 채 다만 왕권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또는 왕과 신하들 사이에 어떻게 권력을 나누고 누가 더 많이 행사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었을 뿐이다. 지방은 중앙의 싸움에서 승리한 집단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전리품이었다. 지방관은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된 사람이었지, 지방민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선택한 목민관이 아니었다. 지방 수령들의 관심 또한 중앙에서의 자신에 대한 신임 여부였지, 지역 백성들의 삶이 아니었다. 봉건 영주들이 경쟁을 통하여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경제사회발전을 위해 애썼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과 같은 선각자도 지방자치제에 부정적이었다. 고려 말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 지방 호족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것을 보고는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중간 지배층을 없애는 것이 오히려 백성들이 당하는 이중적 고통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중앙집권은 유지한 채 다만 그 안에서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사극에서 보면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왕에 대한 견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활발했으나 지방은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러한 역사적 유산이 지금도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지방 간의 경쟁을 없애고 지방에 특화된 다양한 형태의 생활정치가 설 땅을 파괴한다. 중앙에서는 패거리 문화가 양산되기 마련이요, 공급자 중심의 사고와 서울 중심의 정책개발로 정책수요자나 지방소비자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앙집권을 고집하는 행태의 본질은 이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는 세력들의 자기이익 지키기나 다름없다.

지금처럼 중앙이 주체가 된 채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분권은 진정한 분권이 아니다. 지방이 행정 권한과 인력, 예산운용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판단으로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방 간에 잘살기 경쟁이 시작될 때 비로소 지방자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개헌이 그 첫 단추이다. 제도변경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는 제도를 설계하거나 운영해 나가면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국가경영능력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 것이다.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는 당위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내년으로 예정된 개헌에서도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은 쉽사리 채택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중앙 중심의 제도에 기대어 지방을 관리해 온 세력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순순히 내놓을 리가 있겠는가.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이나 중앙의 관료가 지방의 입장을 대변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지방분권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얻고자 하는 자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지방이 각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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