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 초등학교 살린 ‘야외 극장’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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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1   |  발행일 2017-06-21 제14면   |  수정 2017-06-21
20170621
대구 반송초등 학생과 학부모들이 지난 9일 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달빛캠프에서 야외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고 있다.

벚꽃길로 유명한 용연사 방향으로 얼마쯤 가다보면 대구 달성군 반송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다. 달빛이 내려앉은 지난 9일 밤 10시30분쯤. 전교생 70명이 전부인 작은 시골초등학교 운동장에 야외극장이 설치됐다. 캠핑용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는 가족 단위 관객에서부터 운동장 바닥에 자리를 펴고 저마다 편한 자세로 영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있었고, 이른 무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은 평평해야 할 스크린을 불록하게 만들었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송초등 ‘가족사랑 달빛캠프’
아나바다 장터 등 다채롭게 꾸며

정해진 틀없는 자유로운 무대에
교사·학부모·아이들 한데 어울려
4년째 성황…학생 수도 늘어나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학교의 ‘반송가족사랑 달빛캠프’의 마지막 순서인 ‘잔디밭 가족 영화 관람’ 풍경이다. 지난해까지는 텐트를 치고 1박2일 캠프로 운영했지만, 올해부터는 안전 등을 고려해 영화만 보고 돌아가는 당일 행사로 마련됐다. 그럼에도 추억을 만들겠다는 아이와 부모들이 적지 않아 10여개의 텐트가 설치돼 있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진행된 달빛 캠프는 아나바다 장터 활동에서부터 날뫼북춤 공연과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 체험, 학부모들의 재능기부로 꾸며진 페이스페인팅과 풍선아트, 그리고 반송초등이 자랑하는 반송챔버오케스트라 공연, 1~2학년의 댄스공연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틀에 짜인 것은 없어보였다. 객석에 앉아있던 이들이 무대에 올라오고, 무대에 있던 이들이 또다시 객석에 내려가 박수를 치는, 무대와 객석이 반복되는 그런 축제였다. 그리고 운동장 곳곳에 자리잡은 텐트는 그냥 누구의 텐트도 아니었다. 집에서 가져왔을 때만 주인이 있었을 뿐. 운동장에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는 전교생이 함께 사용하는 놀이기구처럼 되어 버렸다.

4년전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의 가족이라고 소개하는 순서도 있었지만, 4년쯤 지나고 나니 이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끼리도 서로 친해져 소개 자체가 별로 의미없는 순서가 됐다.

2012년 학생수가 24명까지 급감하면서 폐교위기까지 갔던 반송초등을 살리기 위해 동창회를 중심으로 학교살리기에 나섰다. 농촌 전원학교로 방과후 수업을 문화예술로 특화하고, 2014년부터 학부모들이 함께하는 달빛캠프를 만든 것이 지금은 지역 내에서 서로 오고 싶은 학교로 탈바꿈시킨 계기가 됐다. 이후 학생수가 늘기 시작, 지난해에는 86명까지 증가했다.

이 학교 최병훈 교무부장(42)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을 포함한 가족전체가 제대로 소통하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달빛캠프 운영을 시작했고, 실제로 학교와 부모 간 오해가 없어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면서 “부모와 교사, 학교 간에 신뢰가 쌓이면서 서로 더 많이 도와주고, 또 참여하게 되면서 학교·학부모·학생 모두가 더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야외영화관을 만든 임종 작가는 “이곳이 고향인 친구가 폐교 위기에 놓인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리고 해서 야외극장을 하게 됐는데 학생과 학부모들이 좋아해 매년 하고 있다”면서 “우리네 추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것만으로 기분 좋다”고 웃어보였다.

4년째 달빛캠프에 온가족이 참여하고 있다는 윤재영씨(42)는 “3학년인 첫째 아들의 경우 사립학교에도 합격했는데 이곳의 교육프로그램이 좋아 여기를 택했고, 둘째는 이 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다”면서 “학교 선생님들이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고, 이런 캠프를 통해 학부모끼리도 서로 다 알다 보니 집에서 친구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반송초등은 앞으로도 매년 전교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반송가족사랑 달빛캠프를 열 계획이다.

글·사진=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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