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공간치(空間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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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1 07:46  |  수정 2017-06-21 07:46  |  발행일 2017-06-21 제23면
[문화산책] 공간치(空間癡)
김현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치, 길치 같은 표현은 비교적 최근에 태어난 언어다. ‘길치(-癡)’와 ‘몸치(-癡)’는 국립국어연구원이 펴낸 ‘2000년 신어’에도 올라있다. 이들 신어에 보이는 ‘치’는 ‘癡’ 또는 ‘痴’로 일부 한자 혹은 고유어 뒤에 붙어 ‘어떤 사물에 잘 적응하지 못함’을 나타내고 더 나아가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는 종종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서툰 행동과 함께 공간의 사물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본다. 소리에 대한 음악적 감각이나 지각이 무디어 음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거나 발성하지 못하는 사람을 음치라고 부른다면, 공간적 감각과 지각이 무디어 공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공간의 사물을 어떻게 부르고 사용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을 공간치 혹은 사물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문을 열어젖히지만,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힐 때는 누가 먼저 물러나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스럽다. 손잡이 위에 붙어있는 문구, ‘당기시오’와 ‘미시오’를 살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콘크리트 바닥과 천장이 드러난 곳에서 유리와 철로 만든 가구는 멋있어 보이지만 이유 없이 우리의 언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실제 대화의 소리와 실루엣이 서로 반사되어 혼란스러워서다.

수업을 해보면 학생들은 조금 다른 자리 배치와 장소의 이동에 낯설어한다.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어느 방향을 봐야 하는지 어쩔 줄을 모른다. 타인의 공간이나 공동의 청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공간의 사물 이름을 부르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재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사실 우리가 공간 속에서 느끼는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벽이나 창에 가까운 자리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안정감과 조망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근처에는 반드시 계단이 있으므로, 기다림이 지루하면 바로 옆 혹은 뒤에 계단을 찾으면 된다. 경첩이 달린 방향으로 문과 창은 열리므로 조금 물러나보면 그 방향을 알 수 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를 정돈하며 철제 다리가 바닥에 끌리며 소리가 날까봐 의자를 살짝 들고 밀어 넣는 사람을 본다. 한 사람의 몸짓에서 드러나는 은은한 품위와 공간의 사물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는 우리의 일상과 관계를 풍요롭게 한다. 조금 물러나 사물을 살피고, 겉모습이 아니라 원리와 재료를 보는 힘을 가진다면 공간치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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