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학의 전통문화이야기] 놀라운 힘, 풍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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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1   |  발행일 2017-06-21 제30면   |  수정 2017-06-21
[손영학의 전통문화이야기] 놀라운 힘, 풍물소리
대구시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바야흐로 농사철이다. 가뭄과 마른장마 소식에 농심(農心)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꾸고 있는 필자도 노심초사 비소식이 간절한데 논에 물대기를 해야 할 농민은 오죽하랴. 오늘은 농요와 연결선상에서 풍물굿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예전엔 비단 농사일 뿐 아니라 큰 명절이었던 단오나 한가위에는 풍물소리가 메아리쳤다.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액(厄)을 몰아내고 마을을 지키는 동제(당산제)나 가내의 평안을 위해 지신밟기를 하는 데 풍물굿이 소용된다. 또한 길을 닦고 다리를 놓거나 하는 마을의 공동 일에 사람을 모으고 경비를 추렴하기 위한 걸립굿도 있다. 민속학자 주강현에 따르면 풍물굿의 역사는 노동의 힘겨움을 놀이로 풀어내던 농민의 일터에서 완성되었다. 근래에는 향토 축제나 설날, 경사스러운 일에 등장하고 있다.

풍물굿은 달리 ‘결궁’ ‘매구’ ‘두레풍장’ ‘징물’ 등 다양하게 불린다. 악기의 명칭도 ‘풍물’ ‘굿물’ ‘풍장’ ‘군물(軍物)’ 등으로 일컫고, 풍물을 두들기는 행위도 ‘굿친다’ ‘걸궁보낸다’ ‘매구친다’ 등으로 여간 많은 게 아니다. 경상도 지역은 주로 ‘매구친다’고 한다. 여기서 악기는 ‘풍물’로, 집단적인 굿은 ‘풍물굿’으로 가려 썼다. 대개 농악이라고 칭하고 있으나 문헌상 처음으로 농악이라는 말이 기록된 것은 1936년 ‘부락제’(조선총독부 발행)라는 책에서였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단결시키는 구심점의 하나가 타악기 특유의 힘이 넘치는 소리에 있음을 알고는 풍물굿을 말살시키는 술책을 부렸다.

마을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 풍물단은 꽹과리·징·장구·북·소고·태평소·나팔 등 타악기가 중심이 되고, 영기(令旗)·농기(農旗)가 따른다. 빠른 가락의 꽹과리소리, 느린 장단에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 퍼지는 징 소리, 장구와 북, 태평소의 음색은 높낮이로 리듬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진행되다가 맺는 장단에 이르러서는 더욱 빠르게 끝난다. 요란한 불협화음이 아닌 귀를 시원하게 하는 화성음이자 화합된 자연의 소리다.

풍물소리는 팔뚝에 돋아난 힘줄을 꿈틀거리게 하는 놀라운 힘과 흥겨움을 가지고 있다. 그 소리에 천근만근 무겁던 시름이 풀리고, 피로한 낯빛에는 생기가 돈다. 농민들은 워낙 바빠 쉴 날이 없어서 한꺼번에 몰아서 놀았고,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잔치랑 놀이마당을 펼쳤다. 아무 거리낌 없이 풍물굿판에 끼어들어 덩실덩실 즐거이 춤추며 한데 어울리니 마을은 잔치판이 된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들면서도 굿판을 멈춘 이들에겐 기운이 청청하다. 땅에 뿌리를 두고 사는 공동체의 힘을 풍물굿이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신명은 좌절과 고통을 풀어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데서 나온다. 신명 없는 일은 고통의 노동일 뿐. 농민은 힘겨운 노동을 덜어내기 위하여 풍물을 끌어당기려고 한다. 장단에 맞춰 흘러가다 보면 어느덧 큰 바다가 되는 풍물굿. 어디서나 판을 벌일 수 있고,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신바람 나는 대동놀이를 어디서 만날 것인가. 다시 희망의 보습 날을 세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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