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한여름밤의 꿈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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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2   |  발행일 2017-06-22 제31면   |  수정 2017-06-22
[영남타워] 한여름밤의 꿈

#평양에서 ‘대구치맥축제’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10여년 전 중국 연변에 살 동안 연변 대표맥주 빙추안(氷川)을 즐겨 마셨다. 빙추안은 선풍기가 없어도 여름을 날 수 있는 선선한 연변 날씨와 어울렸다. 가끔 북한식당에 들러 평양에서 생산한 대동강맥주도 맛봤다. 빙추안보다 비쌌지만, 목넘김이 깔끔하고 알싸한 청량감이 그만이었다.

5년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대동강맥주 맛이 남한의 맥주 맛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다고 보도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동강 미림지역의 맑은 물을 사용한 대동강맥주의 도수는 5.7%로 남한 맥주보다 1%쯤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 “세계 최고급 맥주를 만들어라”고 지시한 뒤 북한이 영국과 독일의 선진설비와 기술을 도입해 2002년부터 생산했다. 한때 남한에서도 대동강맥주를 맛볼 수 있었지만 2011년부터 미국의 금수조치와 함께 국내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평양에선 이 맥주가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평양 대동강변에서 한 달간 ‘평양대동강맥주축전’이 열려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북한 맥주 이야기를 꺼낸 건 2013년부터 대구에서 매년 열리는 대구치맥축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올해도 대구에선 7월 말에 치맥축제를 연다. 이 축제는 ‘대프리카’로 표현되는 대구의 무더위와 치킨산업의 원조도시인 대구를 알리기 위해 탄생했다.

대구의 치킨과 평양의 대동강맥주가 결합하면 어떨까. 대구에선 치킨을, 평양에선 대동강맥주를 제공해 함께 대동강에서 이벤트를 벌인다는 상상만으로 행복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15선언 17주년 때 서울-평양 간 도시협력방안을 맨 윗서랍에 넣어두고 있다고 했는데, 치맥축제 세계화를 꿈꾸고 있는 대구가 먼저 시도해 봄직하지 아니한가.

#개성에서 ‘왕의나라’ 공연

10년 전 6월 이맘때 무박2일간의 일정으로 북한 개성을 여행한 적이 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이었으니 당시만 해도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일행은 대구에서 오후에 출발해 밤새 버스를 타고 새벽녘 군사분계선에 도착한 뒤 오전에 개성공단 뒷산 진봉산에 올라 각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오후엔 공민왕릉을 비롯해 고려 충신 정몽주의 얼이 서린 선죽교, 고려성균관 등지를 둘러봤다.

공민왕은 개혁군주였지만 비운의 왕이었다. 그는 원제국 고려강점 100년간 원나라에 부역한 고려의 적폐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고려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공민왕은 특히 정략혼인을 한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하다. 현재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쌍분이 있다.

공민왕은 한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성에서 안동으로 몽진을 하는데, 뮤지컬 ‘왕의나라’는 70여일간의 이 과정을 뮤지컬로 제작한 작품이다. 경북도와 안동시가 주최하고 영남일보가 주관하는 이 작품은 2011년 산수실경뮤지컬로 처음 제작된 뒤 지금까지 안동예술의전당, 대구오페라하우스, 서울 국립극장 등지에서 공연됐다. ‘왕의나라’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와 안동지역 백성들의 애환과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대구 역시 원나라와 관계가 깊다. 몽골의 2차 침략으로 팔공산 부인사 초조대장경 목판본이 불에 타고 6차 침입 때에는 몽골군을 피해 공산성으로 들어간 수많은 대구 백성이 굶어죽었다.

뮤지컬의 도시 대구와 안동이 공동으로 참여해 개성 공민왕릉 주변 산수실경을 배경으로 뮤지컬 공연을 펼친다면 어떨까. 핵과 미사일 실험, 사드배치로 남북관계가 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돼버렸지만, 그런 꿈을 꾼다는 것만으로 즐겁다. 상상은 자유니까.

다행인 것은 최근 통일부장관으로 내정된 조명균 장관 후보가 첫 일성으로 “개성공단을 재개시키겠다”고 했다. 그건 지난겨울 촛불시민이 밝힌 소망 중 하나이기도 하다. 평양 대동강변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시고, 개성에서 ‘왕의나라’를 관람할 수 있는 꿈이 현실로 곧 도래하길 기원한다.

박진관 (기획취재부장·사람&뉴스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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