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구례 섬진강 대나무 숲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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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3   |  발행일 2017-06-23 제36면   |  수정 2017-06-23
“쏴∼아∼” 세상을 잊게 하는 대숲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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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에서 순천으로 향하는 17번국도 섬진강가에 ‘숨겨진 명소’라 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대나무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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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압화박물관. 국내 유일의 압화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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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유전자원 온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분류해 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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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분화 분경 전시장. 푸른 것들만 보이지만 산뜻한 꽃향기에 놀란다.

담백하고 삽상하다. 소심한 불안마저 어르는 신성한 힘을 갖추었다. 흔들리면서 기립을 유지하는 온화함에 위로를 얻는다. 금강 스님은 “번뇌가 고요해지는 적적(寂寂)이 되면, 또렷또렷해지는 성성(惺惺)을 만난다”고 했다. 물 흐르고 바람 부는 이곳에서 ‘적적성성’을 만났다.

구례읍서 순천 방향 17번국도 섬진강가
기부프로젝트‘옥스팜트레일워커’코스
1㎞ 대나무숲길은 江 향해 門 열어둔 듯

대숲서 도로 건너 북서쪽엔 야생화 특구
온통 푸른 전시장선 상상 못한 香에 깜짝
국내 유일 압화박물관 등 풍성한 볼거리


◆구례읍 섬진강 대나무 숲길

누군가는 “10년을 살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3년을 살았는데 이제야 가 봤다”고 했다. 오며 가며 늘 보는 숲. 포착하고 주시하고 간직해도 그 마음은 생활 속에서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지리산자락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면서도 지리산에 올라본 적 없는 사람과 비슷할 게다. 그러다 문득, 마침내 분연히 이 숲에 든 사람들은 ‘숨겨진 명소’라거나 ‘알려지지 않은 숲’이라며 홍조를 띠고 말했다.

전남 구례군 구례읍에서 순천으로 향하는 17번국도 섬진강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대나무 숲이 있다. 직선으로 약 600m 거리이니 숲길은 1㎞ 정도 되려나. 그저 고단할 만큼 길지도, 아쉬울 만큼 짧지도 않다. 길은 하늘이 보일 만큼만 넓고 숲은 강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만큼만 촘촘하다.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의자와 평상도 있고, 대나무 사이사이 사성암이 있는 오산 자락도 보인다. 수직의 숲속에 수평으로 흐르는 섬진강은 든든한 동지처럼 내내 함께한다. 대나무는 습기를 좋아해서, 강변의 대숲은 흡족하다. 그러다 한번은 흡, 습기를 들이마시듯 강을 향해 숲의 문을 열어 놓는다.

맞은편에서 할머니 세분과 할아버지 한분이 수런수런 천천히 다가오신다. 단체 쇼핑이라도 다녀오신 건지 할머니들은 모두 까만 선글라스에 꽃무늬 셔츠를 차려 입으셨다. 꽃. 대나무도 꽃이 핀다. 좀처럼 꽃 피우지 않지만, 30년에 한번, 혹은 60년, 120년에 한번 대나무 꽃이 핀다. 한번 피면 전체 대밭에서 일제히 피어난다. 그러고는 모두 함께 죽어버린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나무 꽃 피는 일을 ‘개화병(開花病)’, 즉 ‘꽃 피는 병’으로 본다. 그래도 대나무의 생명력은 끈질겨서 일부가 살아남으면 몇 년 후면 끝내 대밭을 다시 일궈 놓고 만다고 한다. 마치 임진왜란 조선 수군 12척의 전선처럼.

◆숲길의 이름들

조선해군의 병선 160척이 부서지고 장수와 수군이 대부분 전사했던 칠천량 해전의 대패를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길에 전해 들었다. 전선 12척만이 살아남았던 바로 그 해전이다. 곧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한다. 당시 일본군은 밀양과 김해, 진해, 거제를 유린하고 전라도로 향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군량미와 물자를 모으고 무기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 노정의 출발점이 바로 구례다.

구례에서 군관 9명과 병사 6명으로 시작한 조선 수군의 재건은 곡성, 순천, 보성으로 이어졌다. 일본군이 뒤쫓아 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군사, 군기, 군량, 군선을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1597년 9월16일(양력 10월26일)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의 승리를 일궈냈다. 전남은 8개 시·군을 연결해 총 연장 500㎞에 이르는 ‘이순신길 조선수군재건로’를 만들었다. 그 중 구례는 37㎞. 이곳 ‘섬진강 대나무 숲길’은 그 길에 속해 있다.

또한 이 숲길은 ‘옥스팜 트레일 워커 100㎞ 코스’(이하 옥스팜)이기도 하다. 옥스팜은 4명이 한 팀이 되어 38시간 이내에 100㎞를 완주하는 도전으로, 도전을 통해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 혼자가 아닌 하나의 팀이 되어 완주점을 통과하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에서 시작되었다는 옥스팜은 현재 전 세계 12개국 18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전은 가난 없는 공정한 사회 만드는 것, 동등한 기회와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다. 지금까지 2천300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모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 구례에서 처음으로 옥스팜이 개최되었다. 8개국 1천500여명이 참가해 1억7천만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고 한다. 구례의 옥스팜 트레일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잇는 길이다. ‘섬진강 대나무 숲길’은 그 길에 속해 있다.

◆야생화를 가장 쉽게 만나는 법

대숲에서 도로 건너 북서쪽은 군청과 여러 공공기관들이 있는 일종의 신읍이다. 그곳에 구례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일종의 야생화 특구가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물길을 따라 정원이 펼쳐져 있고 그 안쪽에 야생화 연구소, 야생화 분화 분경 전시장, 야생화 유전자원 온실이 있고 그 외에도 한국압화박물관, 압화 체험 교육관, 잠자리 생태관, 농촌문화체험홍보관 등이 모두 오밀조밀 모여 있다.

문 열린 야생화 전시장에 들어서면 상상치도 못했던 향기에 깜짝 놀란다. 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온통 푸른 것들만 있는데 어디서 그런 산뜻한 향기가 날까. 압화박물관은 입구에서부터 놀란다. 압화로 꾸민 조명이라니. 우리나라 유일이라는 ‘한국압화박물관’은 압화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는 곳이다. 어여쁜 꽃을 책 사이에 끼워 눌러두고 가끔 바라보는 것이 압화라고 여겼다면 꽃 타일, 꽃 나비장 앞에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잠자리 생태관에서는 잠자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표본과 아주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들, 최대시속 100㎞의 속도로 날아가 시속 2㎞의 모기를 잡는다는 사실까지. 게다가 상어나 바퀴벌레 등과 같이 살아있는 화석 중의 하나가 잠자리라 한다. 왜 구례에 잠자리생태관이냐면, 대답하기 어렵다. 곤충채집용 망사주머니가 달린 긴 봉을 잠자리채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지 않으려나. 잠자리는 향수(鄕愁)니까.

유전자원온실은 아름답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야생하는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분류해 보살피는 곳이다. 수생 습지 식물, 다육 식물, 희귀 고산식물, 목본 등 645점이 온실 6동에 제 특성대로 모여 자라고 있다. 희귀 고산식물 온실만 잠겨 있고 나머지는 모두 문이 열려 있다. 지리산은 야생화의 천국이라고 한다. 산에 오르지 않고 야생화에 폭 감싸이는 이곳, 천국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광주대구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남원 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 순천방향으로 틀어 구례화엄사 나들목으로 나간다. 19번 도로 구례군청 방향으로 간다. 군청로터리를 지나 구례구역 방향으로 가다 왼쪽 가막정 마을로 들어가 가막정 식당 앞에서 좌회전해 100m쯤 가면 구례휴게소(화산주유소) 굴다리를 지나 대나무 숲길 입구다. 순천방향 17번 국도에서도 보이는데, 가까이 빠지는 길이 없다. 10㎞ 이상 달리다 U턴해 구례휴게소로 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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