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고졸부터 40대 직장인까지…전공 장벽 딛고 정보보안 전문가 도전

  • 이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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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4   |  발행일 2017-06-24 제12면   |  수정 2017-07-03
‘4차 산업혁명 열풍’ 직업훈련기관 가다
20170624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의 ‘K-ICT 정보보호 인력양성과정’ 훈련생들이 데이터베이스 실습 강의를 듣고 있다. 훈련생 20명을 뽑는 데 42명이 몰렸다.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 제공>

지난 21일 오후 4시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대구 동구 신천동) 2층의 강의실에서는 ‘K-ICT 정보보호 인력양성과정’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강생 20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실습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강사의 설명이 끝나자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날 강의를 맡은 사람은 한국기술교육대학교가 선정한 ‘스타직업훈련교사’ 안형락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 교무부장. 그는 “수강생 평균 나이는 28세로, 로봇프로그램 관련 국내 대회 1등 경력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부터 회계 분야 업무에 12년간 종사하다 전직을 꿈꾸며 들어온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있다”며 “모두 훈련에 대한 열의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4차산업 인력양성에 나서면서 지역 인재들이 직업훈련과정으로 몰리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시장 속에서 전망이 비교적 뚜렷한 분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4차산업 대응력 키우는 정부

지난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산업 환경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위치하면서도, 기존 산업혁명과는 차별성을 띠고 있다. 1~3차 산업혁명은 사람의 손·발을 기계가 대체하는 방식으로 자동화가 이뤄지고 연결성을 강화해온 과정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이 사람의 두뇌를 대체하는 시대의 도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많은 기대와 우려를 낳고 있다.

당시 WEF에서 발표된 ‘미래고용보고서’는 향후 5년간 선진국 및 신흥시장 15개국에서 일자리 총 710만개가 사라지며, 그중에서도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직 등에서 45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신규 일자리는 210만개 수준으로 늘어나고 500만개의 일자리가 급감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결국 인공지능 발달로 인해 단순노동 등의 업무 영역을 로봇이 대체할 가능성이 높고, 노동자 간 나아가 국가 간 빈부격차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K-ICT 정보보호 인력양성과정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 위탁교육
훈련생 외출 체크 관리규정 엄격
교육 두달째 탈락자 한명도 없어



다행히 한국은 4차 산업혁명 대응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위스 금융기업 UBS가 지난해 4차 산업혁명에 잘 대응할 것으로 판단되는 국가 순위를 발표한 결과, 한국은 총 139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법적 보호 점수에서 비교적 높은 지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실업난의 장기화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4차 산업혁명분야 인력양성에 적극 나서 대응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4차산업 관련 직업훈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늦은 편이다. 독일은 사회 취약계층과 재직자 등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은 정보기술(IT) 분야를 중심으로 직업훈련 강좌를 향후 5년간 현재의 두 배 수준인 5천개로 늘리고, 2019년에는 전문직업대학을 신설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500명 뽑는데 2천명 몰려

올 초 고용노동부는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융합형 고급 직업훈련인 ‘4차 산업혁명 선도인력 양성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스마트제조,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정보보안, 바이오산업 등의 분야에서 직업훈련을 수행할 전국 11개 기관을 선정하고, 본격적인 인재 양성에 나선 것. 현재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융합기술진흥원 등에서 총 24개 훈련과정을 진행 중이다.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는 우수한 인프라와 전문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민간직업훈련기관으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직업훈련과정에 대한 열기는 뜨겁다. 전국 11개 기관 24개 훈련과정에 훈련생 500여명을 뽑는데, 지원자가 2천여명이 몰려 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기관마다 훈련생 선발을 위해 서류뿐만 아니라 면접·실기시험까지 진행했다. 20명을 뽑는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의 ‘K-ICT 정보보호 인력양성과정’에도 정원의 2배가 넘는 42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협약기업 전문가 등 우수 교수진
7개월간 현장감 있는 교육 진행
교육생에 다양한 취업정보 제공
보안업체와 일자리 협약도 체결



지난 4월 첫 스타트를 끊은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의 훈련과정은 오는 11월까지 7개월간 이어질 예정이다. 훈련 경력이 높은 교사와 협약기업 전문가 등 우수 교수 10여명을 편성해 현장성 있는 프로젝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 관계자는 “잠깐의 외출도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관리 규정이 엄격한 편”이라며 “다행히 두 달째인 현재까지 한 명의 탈락자도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훈련과정을 이수한 교육생들이 취업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는 훈련과정을 이수한 교육생들에게 취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취업처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 U플러스 등 6개 업체와 협약을 맺었으며, 일부 업체의 경우 신규 채용을 약속한 상태다.

곽태호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 이사는 “지난 21일 대구혁신도시 내 공공기관을 담당하고 있는 IT보안솔루션 기업 ‘아이티원’과 협약을 체결했고, 내달 초에도 보안솔루션업계의 대표주자인 ‘파수닷컴’과 채용협약을 맺을 예정”이라며 “연매출 300억원에 이르는 건실한 국내 보안업체들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보안 분야 인력난이 심하다. 올 연말까지 총 10개 정도의 취업처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비전공자 도전도 잇따라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의 ‘K-ICT 정보보호 인력양성과정’ 수강생 중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관련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이들도 상당수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경영학과를 전공한 손영호씨(30)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졸업 이후 유통업 분야 취업을 준비해오다, 유통업이 점점 자동화됨에 따라 보안 관련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그에 대한 기술을 갖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어 방향을 틀게 됐다”고 말했다.

문과 출신인 만큼 생소한 단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보안컨설팅 분야 취업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손씨는 “교육생들끼리도 서로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고 연구한다. 학교가 문닫을 때까지 밤늦게 남아 함께 공부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4차산업 보안 분야의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는데, 막상 그 장벽 안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 장벽을 한번 뚫기만 하면 오랜 기간 이 업종에 종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대인씨(28)도 계명대에서 스페인어와 무역을 전공하고 개인 사업을 꿈꾸다 보안분야 기술로 눈을 돌린 케이스다. 김씨는 “멕시코 현지에서 취업에 성공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됐다. 국내에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 힘들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앞으로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 것’이라며 이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내에 정보보안 관련 인력이 극히 적다는 사실을 알게 돼 놀랐다고 전했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보급률에 비해 보안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편이라는 것. 그는 “전문가 자격증을 순차적으로 취득한 뒤 내 이름을 걸고 정보보안회사를 직접 차리는 것이 꿈”이라며 “막상 공부해보면 비전공자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을 만큼 비전이 있는 분야다. 대기업 취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금만 눈을 돌리고 용기를 내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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