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 사법이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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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6   |  발행일 2017-06-26 제29면   |  수정 2017-06-26
[기고] 대한민국 사법이 나아갈 길

법원이 시끄럽다. 1971년에 1차 사법파동이 있었고, 1988년 이후에는 정권 교체기마다 소장 판사들이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이른바 사법파동이 있었다. 그때마다 대법원장이 중도에 사퇴하거나 법원 개혁 약속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이번에도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까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광복 이후 틀을 잡은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한 시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사법권이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된 근대적 사법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근대적 사법제도가 본격적으로 안착하기 전 한일강제합병이 됐다. 일제강점기 식민사법은 식민지 지배 수단으로 전락해 민족해방운동 탄압의 최전선에 섰다.

광복 이후 과도기적으로 미 군정을 거쳐 1948년 9월13일 사법권을 미 군정으로부터 이양받아 가인 김병로 선생이 초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법원에서는 2015년에 9월13일을 제1회 ‘법원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이날 기념식을 치르고 있다.

김병로 선생에 의해 도입된 사법체계가 현재까지 약 70년간 유지돼 오고 있다고 본다. 그 본질은 ‘엘리트 관료 법관에 의한 시혜적 사법’이라 할 수 있다. 소년 등과해 폐쇄적인 관료 코스를 걸은 엘리트 법관이 사법권을 독점했으며, 시민은 사법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자 시혜의 대상이었다. 그런 가운데 이용훈 대법원장은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를 표방했다. 국민은 사법의 주체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 수동적 존재로 자리매김됐던 것이다. 다른 대법원장들은 그런 인식조차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가 앞으로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은 ‘시민 참여적 사법’ ‘변호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사법’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민은 사법 절차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돼야 하고,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사법제도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시민이 재판의 주체로 참여하는 방안으로 △형사재판에서 완성된 형태의 배심제(배심원 수의 12명까지 증원,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 인정,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판결 시 검사의 항소 제한 등) 시행과 그 대상 확대(피고인이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보장) △참심제 노동법원(법관과 노사참심관으로 재판부 구성) 도입 △민사재판에서의 배심제 징벌배상 제도(일반적 징벌배상으로 배상액에 한도 없고 배심재판으로 진행) 도입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법조 일원화로 엘리트 법관의 폐쇄적 순혈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법관은 시민을 대변하는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 등 법조인 중에서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임용돼야 한다. 법조 일원화의 단계적인 시행으로 2026년부터는 경력 10년 이상 된 법조인 중에서 판사를 임용하도록 돼 있다. 그렇게 임용된 법관에 대해서는 적어도 임기 동안 본인의 동의 없이 전보를 금지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장의 법관에 대한 인사권은 크게 제약될 것이고, 법관들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급심, 특히 1심을 강화해 국민들이 1심 재판 결과에 승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국민 개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소모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변호사가 우리 사회의 법치 확립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징벌배상 제도 △일반법 형태의 집단소송 제도 △국민소송 제도 △민사소송에서의 증거개시 제도 △공공변호인 제도(수사 단계에서부터 모든 피의자 신문 시 변호사 참여 보장)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법무담당관 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소장 판사들의 사법개혁 요구가 있었으나 사법의 큰 흐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소장 판사들 역시 엘리트 관료법관이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사법의 근본적인 체계를 새롭게 함으로써 한 단계 상승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선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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