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왜 한국엔 헤리티지나 브루킹스가 없나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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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7   |  발행일 2017-06-27 제30면   |  수정 2017-06-27
정치적 구호나 주장 대신
싱크탱크의 정책 통해
보수·진보정부의 내일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이념갈등 안정적 관리 가능
[화요진단] 왜 한국엔 헤리티지나 브루킹스가 없나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이념 갈등이 정치현장에서 날카롭게 부각되고, 사회 갈등의 심각한 원인으로 지적 받게 된 것은 노무현정부 때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노 정부의 공과(功過)를 논할 때 첫 번째 과(過)로 이를 꼽는 전문가도 적잖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신은 보수·진보 중 어느 쪽인가’를 빠짐없이 묻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여론과 개인을 이해하는데 이념적 잣대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19대 대선을 거쳐 문재인정부에 이르러 이념 갈등은 보다 고착화된 듯하다. 문정인 특보의 워싱턴 발언 파문과 사드·북핵 문제, 정부·청와대 인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상향, 국정원·검찰·재벌 개혁, 일자리 창출, 원전정책 등을 둘러싼 갈등 어느 하나도 이념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갈등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념 갈등은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갈등을 잘만 관리하면 순기능에 기여한다. 문재인정부가 표방한 통합의 정치도 보수와 진보를 하나로 뒤섞자는 말은 아닐 게다. 민주적 통합의 본질은 다양성 속의 조화다. 문제는 ‘다양함’을 어떻게 건강하게 관리하느냐다. 이념적 다양성을 건전한 경쟁으로 승화시켜 국가사회에 긍정적 동력으로 작동케 하는 과제다. 이제 그러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금 저급한 이념의 주 생산처이자 악성 유통경로는 정치권이다. 과거 지역갈등을 그리 했던 것처럼 일부 정치인이 저질의 이념 프레임에 국민을 가둬놓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한다. 이념을 보다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치인으로부터 이념을 가급적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념의 건강한 관리’를 싱크탱크에 맡기는 게 하나의 방안이다. 선거 때만 등장하는 특정후보 중심의 전문가 집단을 말하는 게 아니다. 5년마다 바뀌는 정권, 그때마다 남발되는 모호한 정책, 이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 국민은 매번 혼란스럽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구호와 주장만 득세한다. 이 때문에 국민은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막상 어떻게 선택할지 모를 때가 많다. 적잖은 이슈는 국가 울타리를 넘어 글로벌 동향과 연동돼 있으니 더욱 그렇다.

선진국은 정당이 이합집산해도, 정권이 바뀌어도, 합리적 이념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생산·관리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바로 싱크탱크의 숲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책공장이다. 현안에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솔루션 탱크이기도 하다. 싱크탱크의 나라 미국에선 입법·행정·사법부에 이어 ‘제4부’의 지위를 꿰찬 지 오래다. 수준 높은 토론과 리포트를 매일 같이 쏟아낸다. 자신들의 보고서가 정책으로 채택되도록 의회와 정부를 상대로 막강한 영향력도 행사한다. 보수의 헤리티지, 진보의 미국진보연구소, 중도보수의 랜드연구소, 중도진보의 브루킹스 등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싱크탱크들이다. 미국민은 이들에게 연간 수천만달러를 기꺼이 기부한다. 그만큼 국민 신뢰도가 높다.

우리에게도 이런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정치적 구호 대신 싱크탱크의 정책을 통해 보수·진보 정부의 내일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논란 거리인 정부의 지향 가치도 불명확성을 획기적으로 걷어낼 수 있다. 정책 결정자는 유용한 정책 아이디어를 충분히 얻고, 국민은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 풀을 항상 제공하는 든든한 ‘인력보급소’ 역할을 하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일할 사람 못 구해 쩔쩔매는 우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첨예한 이슈가 쉬이 사회 갈등으로 비화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재하는 기능은 물론 정치권을 대신해 정책 대리전을 치름으로써 갈등의 완충 역할도 할 수 있다.

소수 전문가와 정치인에게 맡기기엔 사회는 너무나 복잡 다변하고 미래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이념 갈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새로운 미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계와 겨룰 수 있는 한국형 싱크탱크의 육성이 시급하다.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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