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동아시아 역사에서 배운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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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3   |  발행일 2017-07-03 제30면   |  수정 2017-09-05
결코 뗄 수 없는 관계 한중일
암울했던 과거를 잊는 것도
분노만 되새기는 것도
미래 설계하는 데 도움 안돼
실패의 교훈·자아성찰 필요
20170703

20년 전 서유럽 여행길에 파리 루브르박물관을 보게 되었다. 그 한번이었지만, 입구며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방의 색상이 떠오르는 걸 보면 루부르는 역시 굉장한 미술관임에 틀림없다.

또 한 장면, 파리의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청년이 그림을 보며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런 박물관을 학교 도서관이나 공원 삼아 들르면서 크는 아이들은 어떻게 다를까?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 다녔다. 큰 울림을 주는 위대한 작품들 곁에서 동시대의 삶뿐 아니라 거대한 인류 역사의 흐름과 함께 가는 인간.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 살다가 누구나처럼 소멸의 과정을 밟는다는 생명의 진리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면서 커가는 아이들. 인간이 무엇이며 자신은 누구인지 가감 없이 알 것 같았다. 자기란 존재에 대해 과잉으로 의미 부여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서양 교육을 받은 나는 1776년 미국 독립혁명, 1789년 프랑스혁명이라고 자다가 깨서도 바로 기억한다. 미국 독립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 1500년대 셰익스피어, 1200년대 단테와 신곡, 이렇게만 알아도 서양 역사가 점을 찍으며 위치 감각이 만들어졌다.

요즘은 여러 상황 때문인지 동아시아 역사서를 들여다보게 된다. 중국과 일본, 우리는 가까이 있는 두 나라와 왜 이렇게 불편할까? 일본에는 비운의 망국을 당한 근대사가, 중국은 적대국으로 분류된 현대사가 가슴속과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3국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뒤얽힌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일제가 심어놓은 자학(自虐)사관에서 벗어났지만, 앞날을 위한 자성(自省)사관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근대사와 그들의 근대사를 간단히 비교해본다. 1644년 명에서 청으로 바뀐 중국의 왕조는 강희제까지 번영했지만, 1800년경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에 아편이 밀반입된 것도 명조 말기부터였다. 아편의 유입이 늘면서 백은은 대량으로 유출되지만 아편 밀수는 갈수록 성행했다. 도광제는 거듭 아편 금지령을 내렸지만 아편은 전국을 휩쓴다. 1840년 영국은 중국에 무력 침략을 하고 아편전쟁이 시작되었다.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일본은 열강에 대한 공포의식과 위기의식이 일반대중에까지 확산되었다. 그때 일본은 250년간 평화를 누린 막부시대였다. 막부 최고의 통치자는 장군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명치시대가 아니라 1603년 열린 에도막부부터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1867년 명치시대가 시작되는데, 그때는 민족의식이 높아지고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일왕에 충성하는 중앙집권제가 강화된다. 일본인의 최고 자부심인 명치유신은 젊은 학자와 하급 무사들이 주체가 되었다. 지식인들은 국가지위를 높여 일본을 세계 강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몰입했다. 그들의 유신(Revolution)은 교육과 문화의 근대화였으며, 지식인 집단을 대표한 사람들은 계몽주의 사상가였다. 그들은 자립적·생산적 인간상을 본보기로 하여 일본인의 인간개조를 호소했다. 영국의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본보기를 구하기도 했다. 명치 10년에는 농촌에까지 맹렬한 학습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루소·스펜서 등 계몽사상가의 번역서들이 읽히고 일상과 자연을 구가하는 무수한 한시집이 간행되었다. 그 이전 1600년 중엽 에도막부는 네덜란드와 무역하면서 서양의학부터 배웠으며 1774년에는 해부학 서적이 번역된 역사도 가지고 있다.

암울했던 과거를 잊는 것도, 분노를 되새기는 것도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나?’ 우리 민족은 아쉽기 짝이 없는 조선 후기를 반성의 재료로 삼으면 어떨까?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실패에서의 교훈과 자아성찰에 있다. 반성 없는 자기만족의 사관은 자학사관보다 더 해로울지 모른다. 박소경 (호산대 총장)

임성수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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