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딴따라 박진영이 경북교육감이라면…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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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6   |  발행일 2017-07-06 제31면   |  수정 2017-07-06
[영남타워] 딴따라 박진영이 경북교육감이라면…
변종현 경북부장

“너무 아픈 얘기지만 지난 6년간 케이팝 스타 우승 여섯 팀 중에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정규 교육을 똑바로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교육을 집에서 했거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꿈을 그렸고, 자기세계를 펼쳤고…. 이 대회만큼은 노래 잘하는 친구를 뽑지 않았어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을 뽑았어요.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발 이 한 명, 이 한 명 특별한 아이들이 놀라운 창의력을 가지고 그렇게 커 갈 수 있게 교육제도를 어른들이 잘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가수이자 연예기획자인 박진영이 지난 4월 모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을 끝내면서 털어놓은 마지막 소회다. 꿈을 자유롭게 키울 수 없는 제도권 교육환경과 창의성을 죽이는 교실풍경에 대한 질타나 다름없다. 박진영의 이날 멘트는 1994년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와 닿아 있다.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교실 이데아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세상에 와 있지만 아이들의 교실은 여전히 시커멓고 사방은 꽉 막혀 있다.

박진영의 심사평을 들으면서 사실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것은 2004년 개봉된 ‘말죽거리 잔혹사’였다. 1978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극중 현수로 나오는 권상우가 학교 옥상에서 혈투(?)를 벌이고 내려오면서 외친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라는 대사는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평등해야 할 교실에서 부모의 사회적 계급이 학생 간 계급으로 치환되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폭력이 다시 계급을 공고화하는 장면은 영화 속 얘기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었다. 계급화된 교실은 획일성을 강요하고 튀는 발상을 용납하지 않았다.

창의적 사고는 모두가 평등할 때, 다양성이 인정될 때 가능하다. 똑같은 책으로 배우게 하고 그것으로 순위를 매기려는 이 ‘획일적 교실’ 패러다임에선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정부 출범 후 교육 관련 대선공약이 어떻게, 얼마나 관철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땐 ‘고교학점제’ ‘수능절대평가’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교실 이데아’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좋은 징후이긴 하지만 대입제도와 사회인식의 혁명적 전환 없이는 어떤 제도도 교실을 바꿀 수 없음을 알기에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경북지역에 최근 기숙형 거점 중학교가 잇따라 개교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3~4개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해 규모를 키워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동시에 농촌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해 보겠다는 의도다. 경북에서는 내년까지 모두 6개의 기숙형 거점학교가 예정돼 있다. 농촌 학생이 좋은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 속에서 학력을 쌓고 인성을 기른다면 도·농 학력 격차 해소 등 상당한 성과가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기대되는 건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란 점과 평등한 교실이 가능하리라는 점이다.

물론 정서적으로 부모와의 스킨십이 필요한 나이에 또래끼리 집단 기숙생활을 하는 게 교육적으로 과연 바람직한지, 지나친 통제와 관리가 자칫 자율성과 창의성을 죽이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도 된다. 이 때문에 관리와 자율 간 최상의 교집합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만큼 기숙형 거점중학교 교사의 역할과 책임이 무겁다. 궁여지책 끝에 나온 기숙형 학교이지만 대한민국이 가보지 못한 창의적 교육현장을 만든다는 사명감을 교사들이 가져줬으면 좋겠다. 주입식·강의식·문제풀이식 수업을 지양하고 협동·협력 학습, 프로젝트 수업 등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교실을 지향해 줄 것도 바란다.

수백만명의 아이들을 조그만 교실에 가둬놓고, 똑같은 책으로 배우게 하고,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기고, 성적에 따라 의사나 판·검사를 꿈꾸게 하는, 그런 가르침은 이젠 됐다.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자기 생각을 가진 창의적’ 아이들이 경북의 기숙형 거점중학교에서 배출되길 기대한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꿈을 갖게 만들어 달라. 변종현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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