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리투아니아 빌뉴스(Vilnius)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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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7   |  발행일 2017-07-07 제37면   |  수정 2017-09-05
입장료 받는 빌뉴스大…모든 건물이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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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어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고 한 성 안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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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울레이의 ‘십자가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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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아름다운 서점의 하나로 꼽히는 빌뉴스대 구내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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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디미나스 성 언덕에서 내려다본 빌뉴스 구시가지. 오른쪽에 우뚝한 건물이 빌뉴스대학교 내의 성 요한 교회 종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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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문 위에 있는 검은 성모 마리아 성당.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큰 나라다. 300만명이 넘는 인구에 국토는 한국의 3분의 1에 달한다. 지리적으로 보면 북으로 라트비아, 동과 남으로는 벨라루스와 폴란드, 서로는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와 발트해에 접해 있다. 1990년 3월11일 소비에트 연방 내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다른 발트 국가들의 독립을 이끈 나라이기도 하다. 빌뉴스(Vilnius)는 그 수도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바르샤바를 연결하는 국제철도의 요지다. 12세기부터 중세 무역도시로 번영했으며, 13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민다우카스 왕이 거처할 성으로 건립되었다. 16세기에 도시의 성벽이 정비되면서 각지의 다양한 민족이 모여 국제도시로 성장했으며, 1579년에 빌뉴스 대학이 설립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 역사적 자취는 1994년 유네스코에 의해 빌뉴스 역사지구라는 이름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세 때부터 동유럽 문화 중심지 역할
고딕·르네상스·바로크 등 다양한 건축

구시가지 역사지구 관문인 ‘새벽의 문’
그 성문 위엔 ‘검은 성모 마리아 성당’
나폴레옹이 반한 고딕풍 성안나 교회
강 건너 만우절 하루만 국가인 우주피스
도시 외곽 ‘십자가의 언덕’ 묘한 매력



이처럼 빌뉴스 역사지구는 13세기에서 18세기 말까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중세시대 동부 유럽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국가였다. 따라서 중심지였던 빌뉴스는 자연스럽게 동유럽지역의 문화 중심부로 성장하였다. 특히 빌뉴스에 건설된 중세시대 건축물의 양식은 동유럽 전역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오랜 세월과 전쟁으로 인해 유적의 일부가 손실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많이 복원된 상태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등의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색으로 인해 빌뉴스 역사지구는 유럽의 모든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중한 장소로 여겨진다.

따라서 빌뉴스 관광은 역사지구, 즉 구시가지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곳을 드나드는 관문인 ‘새벽의 문(Gate of dawn)’은 과거 요새로 지어진 성곽의 출입문이었다. 따라서 밖에서 보이는 외관은 입구도 좁고 초라하다. 그러나 성문을 들어서서 고개를 돌리면 성문 위에 르네상스 양식의 멋진 건물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 건물이 바로 기적을 행한다는 검은 성모 마리아를 모신 성당이다. 그러니까 성문이자 성당인 셈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초기에는 도시를 지키는 요새의 일부였는데 1671년에 모셔다 놓은 성모 마리아 성화가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기도실 벽면에는 기적의 은혜를 입은 신도들이 감사의 글귀를 써넣은 은으로 만든 하트가 빼곡하다.

구시가지는 디지요이와 필리에스 대로를 중심으로 역사적 건물들과 기념품점이 늘어서 있고, 그 건물들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이곳에서 내가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은 빌뉴스대학교다. 빌뉴스대학교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대학에 근무하는 사람이 대학에 돈 내고 들어가는 상황이 묘하다. 4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로 유럽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힌다. 리투아니아 화폐 100리타에도 새겨진 것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대학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학 건물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모델이기도 하다. 구내서점과 성 요한 교회, 어문대학 2층과 철학동 벽면 및 천장에 있는 프레스코화 등 세계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대학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도시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축물은 성 안나 교회다. 1501년에 지어진 이 교회는 고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빌뉴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다. 1812년 러시아를 정벌하러 가는 길에 빌뉴스를 들른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어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필리에스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빌뉴스 대성당이 웅장하게 서있는 넓은 광장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빌뉴스의 중심을 형성하는 대성당 광장이다. 대성당이 서 있는 자리는 원래 원주민들의 제단이 있던 곳이었는데, 가톨릭이 들어오면서 허물고 그 위에 성당을 지은 것이다. 성당 지붕 벽에는 성인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지하에는 리투아니아 공국의 공작들이 안장되어 있다. 성당 오른쪽에는 빌뉴스로 수도를 옮긴 게디미나스의 동상이 서 있고, 대성당 뒤쪽의 높은 언덕에는 게디미나스가 처음으로 지었다는 게디미나스 성이 서 있다.

그러나 이곳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이곳 성당 광장이 ‘발트의 길(Baltic way)’ 시작점이라는 사실이다. 발트의 길은 1989년 8월23일에 리투아니아 빌뉴스∼라트비아 리가∼에스토니아 탈린을 이은 인간 사슬을 말한다. 발트 3국 국민 200여만명이 손에 손을 잡고 세계에서 가장 긴 620㎞의 인간 사슬을 만들어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쳤고, 이 평화적 시위는 소련의 50년 지배에서 벗어나 1991년 신생독립국으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성당 앞의 바닥에 동판으로 새긴 ‘스테부클라스(Stebuklas, 기적)’라는 표지판을 설치하여 그 시작점을 기념하고 있다.

이제 이 도시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곳을 찾아가본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빌넬레 강 너머에 있는 ‘강 건너 마을’이라는 뜻의 우주피스(Uzupis)라는 곳이다. 우주피스는 작은 예술인 마을인데, 1997년 4월1일 리투아니아 내 예술가들이 모여 독립 선언을 하여 매년 4월1일이면 독립공화국이 되므로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불린다. 그래서 4월1일만큼은 여권을 제시해야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 장난 같지만 이곳에는 헌법도 있고 대통령도 있으며 12명의 상비군도 있다. 원래 이곳은 수세기 동안 유대인이 살았던 마을이었고, 소련의 해체와 리투아니아의 독립 후 버려졌던 일종의 게토였다. 예술가의 비딱한 시선답게 우주피스의 중심광장에는 검은 천사상이 있다. 입구에는 각국어로 된 헌법 현판이 붙어 있는데, 아직 한국어는 없어서 아쉬웠다. 누구나 실수할 권리, 누구나 게으를 권리, 누구나 독특할 권리, 누구나 사랑할 권리, 누구나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을 권리, 누구나 죽을 권리, 개는 개가 될 권리, 누구나 울 수 있는 권리, 누구나 아무 권리를 갖지 않을 권리, 누구나 그 권리를 등한시할 권리 등이다. 마을 자체의 볼거리는 그다지 없었지만 누구나 무엇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는 권리, 아무나 어떤 것을 그냥 할 수 있다는 권리, 우주피스 공화국의 이야기는 결국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그렇게 원했던 끝없는 자유의 의지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유와 평화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달라이 라마가 우즈피스의 명예시민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빌뉴스 근교의 트라카이(Trakai)나 십자가 언덕으로 유명한 샤울레이(Siauliai)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트라카이는 빌뉴스에서 불과 30㎞가량 떨어져 있는 곳으로, 한때 리투아니아의 수도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수십 개의 호수, 그 호수와 너무 잘 어울리는 섬, 그리고 14세기에 건설된 붉은빛이 감도는 트라카이 성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관광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유명한 곳은 샤울레이다. 빌뉴스에서 214㎞나 떨어진 비교적 먼 거리이고, 특별한 관광지가 없는 데도 리투아니아를 찾은 관광객은 물론 발트 3국을 여행하는 관광객치고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이 도시 외곽 도만타이에 있는 ‘십자가의 언덕’ 때문이다. 샤울레이는 13만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이고, 역사적으로는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연합군이 독일의 검기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자동차로 발트 3국을 여행하면서 라트비아 리가에서 시굴다를 거쳐 빌뉴스로 가는 도중에 이곳을 들렀다. 비 내리는 평일에다 저녁 7시가 넘어서인지 매표소조차 인적이 없다. 언덕 가까이 주차하고 비 내리는 십자가 언덕 입구를 들어섰다. 박칼린을 모델로 했다는 이문열의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민음사, 2011)에 등장하는 바로 그곳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리투아니아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야트막한 언덕 하나에 셀 수 없이 많은 십자가가 빼곡히 박혀 있는 언덕이다. 소련 시절, 종교가 허용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이 언덕에 십자가들이 박히기 시작했고, 당연히 소련군들은 매일같이 갈아엎었지만, 그럴수록 십자가는 늘어만 가서 마침내 십자가의 언덕이 생겨나게 되었다. 좁은 언덕길을 따라 크기도 모양도 모두 다른 십자가의 홍수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무슨 소망이 이렇게 많을까 상념에 잠긴다. 이 간절함 앞에서 감히 내 소소한 소원을 내려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평화’라는 낮은 읊조림만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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