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든 야구부 선수들 “우리도 빡세게 공부해요”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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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0 07:38  |  수정 2017-07-10 08:54  |  발행일 2017-07-10 제15면
■ ‘공부 안 하는’ 학교 운동부는 이제 옛말…대구서 주목받는 체육 특기자 학습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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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복현중 이창걸 교장이 태권도부 학생과 일대일로 영어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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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상중 야구부 선수들이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대구시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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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상중이 직접 제작한 종합문제집. 야구부 학생들은 이 문제집으로 부족한 교과 공부를 보충하고 있다.

‘공부 안 하는’ 학교 운동부가 이젠 옛말이 될 것 같다. 교육부는 최근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학교 체육이 엘리트 선수 육성 중심에서 공부하는 선수를 기르는 방향으로 탈바꿈할 것을 주문했다. 대구 몇몇 학교는 운동부를 정상화하기 위해 학생 선수들이 학교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 장치를 발 빠르게 마련해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복현중 태권도부
영어 전공한 교장선생님이 직접 지도
주말엔 원어민 교사가 2시간씩 수업

경상중 야구부
평일 3회·주말 2시간 원격학습 운영
학년별 문제집 제작·전담도우미 지정
선배인 이승엽 선수가 학습 동기부여

삼덕초등 배구부
선수들끼리 모여 서로 고민하며 공부
올 학업성취도평가 미달된 선수 없어


◆교장 선생님의 ‘영어 단체 카톡방’ 눈길

대구 복현중 이창걸 교장은 지난 4월 초 ‘복현태권도영어팀’이란 단체 카톡방을 개설했다. 카톡방 인원은 이 학교 태권도 체육 특기자 19명과 이 교장을 포함해 모두 20명. 이곳에서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영어로 자기 소개하기’ ‘영어 노래 한 곡 외우기’ 등 간단한 영어 숙제를 내고,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대화의 말미엔 ‘꿈을 가져보자’ ‘오늘도 파이팅!’이란 격려도 잊지 않았다.

평소 공부가 뒷전이었던 태권도부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이 내주는 영어 숙제가 어리둥절했지만 즐겁게 임했다. 학교와 학년, 장래희망과 목표, 나의 롤모델이 누군지 영어로 말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재밌기도 했다. 이 교장은 숙제 검사도 직접 맡았다. 학생들은 오전 자습시간, 교장실에 들러 선생님과 마주 앉아 짧은(?) 영어로 자기를 소개했다. 틀린 표현이 나오면 영어를 전공한 이 교장이 그 자리에서 고쳐줬다.

학교는 주말엔 원어민 교사 Elizabeth Hirschauer를 초빙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태권도부 학생들은 전원 등교해 2시간씩 생활영어를 배웠다. 교과서보다 일상에서 필요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정규수업 때 무슨 말인지 잘 몰라도 ‘다른 친구들이 아는 내용일까’ 물어볼 수 없었던 것도 천연덕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했다. 이창걸 교장은 “체육특기자들이 학습을 방치하고 운동에만 전념하는 시대는 지났다. 운동을 하면서 기초학습 역량을 길러놔야 나중에 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길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태권도는 종목 특성상 전 세계에 한국인 지도자들이 나가 있다”면서 “영어를 잘하면 세계 무대에서 지도자로 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진출 분야가 다양해질 것 아니냐”고 영어공부의 취지를 설명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태권도부 박소희양(2학년)은 “영어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매일 같이 운동하는 친구, 선후배와 함께 영어 공부를 하니까 훨씬 재밌고 자신감도 생긴다”면서 “운동부는 공부를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체육 특기자 학생들을 위한 학교의 노력은 금방 입소문이 퍼졌다. 인근 학교 운동부소속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학 여부를 묻는 문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수업·이승엽 초청 강연으로 학습 동기 부여

대구 경상중도 ‘공부하는 선수’를 길러낸다. 이 학교 야구부는 삼성라이온즈 이승엽(39회), 롯데자이언츠 손승락 선수(45회)를 배출했으며, 전국 소년체전 야구 중학교부 단체 우승(2015년), 전국삼성기타기 야구대회 단체 우승(2016년)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야구부 학생 선수는 총 40명이다. 학교는 학생 선수들을 위해 원격학습시스템 이스쿨(e-school)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학생들은 매주 월·수·금요일 아침 자습시간과 주말 2시간 동안 학교 진로활동실과 가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를 학습한다. 학년별로 학습코칭 도우미를 지정해 학생들이 학습에 대한 피드백을 곧바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학교는 태플릿 PC 30대를 설치하고, 학년별 종합문제집을 제작했다. 또 이승엽 선수의 초청강연을 열어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최저학력제를 시행해 기초학력에 미달되는 선수의 경우 오후에 훈련시간을 제한하는 페널티를 줬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해 국가성취도 평가에서 기초 미달된 야구부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학업성취도평가서 최저학력 미도달 학생 ‘0’

삼덕초등 배구부 선수 13명은 체육관 내 공부방에서 함께 책을 펼친다. 어떤 학생이 수학 문제를 못 풀어 낑낑대다 옆 친구에게 물어본다. 친구와 머리를 맞대 문제를 고민하면 감독 교사는 이를 지켜보다가 대부분의 학생이 어려워하는 문제는 체크해 담임교사에 알려준다. 담임교사는 이 문제에 대해 보충지도를 해주는 식이다. 소위 ‘또래학습시간’을 통해 서로 묻고 가르쳐주면서 공부를 하는데, 지난해 기초학습부진으로 평가받은 학생이 이 시간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올해 부진 평가를 면했다. 지난달 치러진 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배구부 학생은 없었다.

김정희 삼덕초등 배구부 지도코치는 “배구는 제한된 공간에서 공을 계속 따라다녀야 해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된다. 선수들의 이러한 능력은 공부할 때도 적용이 되는데, 서로 묻고 가르쳐주면서 공부하니까 수업태도가 흐트러지지 않고 단시간에 집중해 공부한다. 공부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학업성취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아들이 배구부에 들어간다고 해서 자칫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성적이 올랐다. 운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공부도 틈틈이 하면서 성적까지 잘 받으니 일석이조”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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