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힘든 하루를 사는 힘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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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0 07:46  |  수정 2017-09-05 11:02  |  발행일 2017-07-10 제15면
20170710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살아온 날이 많다 보니 어떤 독특한 일이 일어나면 데자뷔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사건이나 순간이 불현듯 겹쳐 떠오를 때가 있다. 학기말 수행평가 결과 처리가 한창이다. 몸이 허약해 체육활동이 힘들다는 요보호학생 중 한 학생의 사안으로 협의회가 열렸다. 수행평가 100% 인정 처리 문제로 증빙자료를 요청했더니 어머니가 자녀의 눈을 피해 잠시 학교에 들렀다. 진단서에는 진단 내용과 평생 치유가 어렵다는 병명이 쓰여 있었다. 몸도 힘든데 살아가는 용기가 꺾일까봐 자녀에게는 병명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자꾸만 멀어진다고 했다.

그날 기억 저편에 파리한 얼굴, 뼈밖에 안 남은 팔을 가진 아이가 어두운 구석방에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딱 10년 전, ○○학교 근무할 때 학생이었다. 어느 날 외상도 없는데 살짝 닿기만 해도 칼로 찌르는 듯하고, 선풍기 바람만 스쳐도 팔이 잘려나가듯이 아픈 증상이 생겼다고 했다. 문제는 정확한 원인도 치료 방법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가정 방문을 해보니 조부모 병수발 하느라 부모는 집을 비웠고, 아픈 아이는 어두운 단칸방에서 극심한 고통으로 뒹굴고 있었다. 아이를 만질 수도 없어 같이 갔던 선생님과 통곡을 했다. 그때부터 지인에게 수소문해 이 분야의 권위자인 경북대 통증의학과 교수와 직접 통화를 하고 정밀 진단을 약속 받았다.

놀랍게도 바로 그 무렵,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삶을 파괴하는 고통,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이 방영됐다. 전 선생님에게 이를 알려 드리고 그 프로그램의 의도처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예상대로 ‘CRPS’로 판명됐고 원인은 그 전해 친구와 부딪혀 팔이 꺾인 적이 있었는데 아팠지만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형편이라 그냥 넘어갔던 것이 이러한 증상으로 나타났으리라고 추정했다. 이후 관련 자료와 사연을 적어 대구시교육청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이 병을 처음으로 등록해 병원비 지원을 받았다. 이후 작은 관심을 보태다가 그 학교를 떠나면서 소식이 끊어졌다.

이번에 수소문해보니 경북기계공고 특수학급으로 진학해 재택수업으로 졸업을 했으며, 그동안 ‘척수신경자극기’를 몸 속에 심어 교감신경차단술 고주파를 쏘아 통증을 완화시켰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작년에 몸속 기기의 배터리를 교체하려고 병원에 갔더니 이미 배터리는 모두 소진되었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자신도 모르게 그 무시무시한 난치병이 완치가 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반가운 마음에 문자를 넣었다. 나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아팠던 기억이 너무 커서 의식 속에서 중학교 시절은 흐릿하게만 남아 있어요. 그러나 늘 감사하며 살아왔습니다.”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중학생 시절, 부모의 불화와 가난과 질병은 학업 성취뿐 아니라 학교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낳는다. 사소한 일이 큰 문제로 번진 사건에는 그러한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 절박한 아이를 우리는 오늘도 무심히 지나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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