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나에게 맞는 방학 과제

  • 최은지
  • |
  • 입력 2017-07-10 07:50  |  수정 2017-07-10 08:53  |  발행일 2017-07-10 제18면
“여름방학 동안 책읽기 등 작은습관 몸에 배게 만들어요”
20170710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여름방학이 가까워졌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설렌다. 그런데 설렘과 기다림만 있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걸림돌도 있다. 방학과제다. 요즈음은 방학과제를 선생님이 무조건 내어주는 게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짐이 되는 게 방학과제다. 방학기간을 아무리 신나게 보냈다고 해도 방학과제를 제대로 못 하고 개학을 맞는다면 개학날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무거운 발걸음으로는 2학기를 힘차게 출발할 수가 없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방학과제다. 하기 싫은 과제를 정해서 억지로 힘들게 하지 말고 진짜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을 과제로 정하면 어떨까?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으로 말이다. 과제이면서도 재미있는 거 뭐 없을까 한 번 찾아보자. 분명 있을 거다.

아침마다 스스로 일어나기
30번 이상 꼭꼭 씹어 밥 먹기…

“즐거운 마음으로 과제 해결하면
방학 끝나고도 실천으로 이어져”


여기 방학을 재미있게 보내고 발걸음 가볍게 개학을 맞아 2학기를 힘차게 시작한 한 아이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꽤 오래 전 이야기다. 6학년 덕호는 초등학교에서 마지막인 여름방학을 보람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꼭 하고 싶었던 것을 방학과제로 정했다. 책 읽기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방에 있는 ‘삼국지’ 를 다 읽는 것으로 방학과제를 정한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 방 책꽂이에 있는 삼국지를 우연히 지나가듯이 슬쩍 읽어봤는데 아주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방학과제로 정하면서 조금 망설이기는 했다. 다섯 권이나 되는 그 두꺼운 책을 과연 방학기간에 다 읽을 수 있을까. 괜히 욕심을 낸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재미가 있었다. 방학 첫날부터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4학년인 동생이 같이 놀자고 졸랐지만 거들떠보지 않고 책 읽기에 푹 빠졌다. 밥 먹을 때도 책을 읽다가 엄마한테 꾸중을 들은 적이 여러 번이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방학이 반도 안 지났는데 다섯 권을 다 읽어버렸다. 그런데 삼국지 읽기를 끝낸 덕호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삼국지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거다. 밤에 잠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유비가 나타나고 장비가 장팔사모창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이용하여 조조군을 물리치는 장면도 그려졌다. 적토마가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수많은 장군과 군사들이 싸우는 장면이 삼국지 책에 있는 지도와 겹쳐서 보였다.

덕호는 A4 종이를 꺼냈다. 삼국지 책에 있는 지도를 보고 베껴 그리기 시작했다. 위나라, 오나라, 촉나라가 나타난 중국지도를 정성껏 그려서 문구점에 가서 수십 장을 똑같이 복사해왔다. 볼펜도 빨간색, 까만색, 파란색, 녹색을 준비했다. 삼국지를 다시 펴놓고 찬찬히 읽으면서 지도 위에 전쟁지도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먼저 적벽대전을 그렸다. 조조군은 붉은색 볼펜으로, 제갈공명군은 파란색 볼펜으로 구별하여 화살표로 그려 넣기 시작했다. 밀고 밀리는 장면을 지도 위에 나타내보니 그 또한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재미 그 이상이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은 물론 제갈량, 조조, 손권, 노숙, 주유, 동탁, 여포, 공손찬, 원술, 사마의, 여몽, 맹달 …. 수많은 장군과 전략가들이 나왔다. 헷갈리는 장면은 다시 책을 읽고 읽으면서 그려갔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삼국지 전쟁지도’라는 제목이 붙은 두꺼운 책 한 권이 떡하니 만들어졌다. 자랑스러웠다. 무언가 큰 것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개학날 발걸음이 가벼웠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방학과제를 자랑하고 싶어서다.

6학년 여름방학을 이렇게 보낸 덕호는 그 뒤부터 책벌레가 되어 갔다. 여름방학 과제를 하면서 붙인 책 읽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책 읽기와 공부하기는 진득하게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게 닮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다닐 때는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덕호 곁에는 언제나 책이 있다. 출장을 갈 때나 나들이를 갈 때, 아니 등산을 갈 때도 그의 배낭에는 언제나 책이 한 권 들어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방학이다. 꼭 책 읽기가 아니라도 좋다. 아주 작은 습관 하나라도 제대로 몸에 배도록 해본다면 얼마나 신나고 멋진 방학이 될까?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기, 아침마다 똥 누기, 30번 이상 꼭꼭 씹어 밥 먹기, 손톱 물어뜯는 버릇 없애기 …. 잘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는 게 얼마든지 많다.

곧 맞이하게 될 여름방학, 나에게 꼭 맞는 작은 과제 하나 정해서 신나게 해결하고, 개학날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서서 2학기를 힘차게 시작해보자.

윤태규<전 동평초등학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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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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