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이테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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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0 07:31  |  수정 2017-09-05 11:03  |  발행일 2017-07-10 제22면
20170710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지난주 대구여성가족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람책’의 7월 주인공이 되어 판소리하는 소리꾼이 아닌 인간 김수경의 사연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관객 앞에 나를 드러내고 대화를 풀어가는 상황이 꽤 익숙한 편인데도 ‘무대라는 대나무 숲’이라는 주제로 필자가 살아온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들어주는 분들과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여유 없이 달려오기만 하느라 잊고 지냈던 행복한 옛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 당시에는 답답하기만 했던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습니다. 어색하고 쑥스럽던 그 시간은 어느덧 지난 시간을 차곡차곡 정돈하는 후련하고 개운한 값진 기회, 필자를 성장하도록 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무의 줄기나 가지를 가로로 자른 단면에 나타나는 둥근 테를 나이테라고 하지요. 나이테를 살펴보면 나무의 자라온 환경이 보인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해에 가뭄이 들었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고 하니, 나무는 나이테를 통해 온몸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게도 모두 자신만의 나이테가 있을거야.’사람의 역사를 기록하는 그 사람만의 나이테. 가뭄과 장마를 지내고 반듯하고 멋스럽게 남은 세월의 나이테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국악작곡가 임교민님이 작곡하고 지역의 자랑스러운 젊은 국악연주단체인 ‘수풀림’이 연주한 ‘나이테’라는 곡을 추천할까 합니다. 실제 연주를 듣고 본 순간 느꼈던 감동과 먹먹함이 생생히 기억나는데요. 음원으로 감상해도 충분히 가슴속 깊은 울림을 느낄 만한 곡입니다.

사람은 나무와 무척 닮아 있는 듯합니다. 외로운 시간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고 아픔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배우고 성취와 기쁨을 쟁취하며 더욱 풍성해지고. 그렇게 살면서 만나는 사건들은 나이테처럼 지워지지 않는 두꺼운 세월의 흔적으로 남습니다.

어린 나무가 비와 바람, 뜨거운 햇볕 아래 더 힘차게 뿌리 내리고 가지를 뻗어 나가듯 사람도 수없는 실수와 실패, 성공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성숙해지는 것이지요.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무가 지닌 흠집과 옴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미운 듯 고운 듯 한겹 한겹 더해진 세월의 나이테가, 남모를 흠집이 더 의미 있는 삶의 과정이 될 것이며, 보다 깊고 튼튼하게 나만의 아름다움으로 뽐낼 수 있다는 것.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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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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