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감기 몸살의 의미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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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0   |  발행일 2017-07-10 제30면   |  수정 2017-09-05
일주일 감기몸살 앓아보니
나의 기준과 입장을 버리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게 돼
어른이 되고 철든다는 것은
타인 헤아리는 것에서 출발
20170710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사실 많이 아팠다. 조금 무리하고 잠들었다가 새벽녘 으슬으슬한 기운에 잠이 깨었을 때, 이미 코와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럼에도 새벽 운동을 하고 출근하였다. 조금씩 감기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어차피 잡혀있는 일정이기에 회의와 출장, 주말 야간행사까지 치렀다. 거기에다 지인들과 저녁 약속도 미루지 못하고 참석하였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일주일 내내 출근을 하였고, 퇴근을 하고 나면 끙끙 앓았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아무리 감기가 심해도 2~3일이면 거뜬히 나았고, 여름 감기는 거의 없었다. 또 설사 일주일 이상 증상이 계속되어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몹시 힘들었고, 퇴근 후 집에서 열 시간 가까이 쓰러져 휴식과 잠을 청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이렇게 감기를 오래 앓는다는 것은 그만큼 몸이 약해졌다는 것이며, 동시에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이제부터 조금씩 청춘시절의 습관과 자신감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을. 때로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만남과 두세 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키던 열정조차 조금씩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돌이켜보면 오랜 프리랜서 생활이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을 너무 당연시했던 것 같다.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꿈과 생활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바퀴를 굴려왔던 것이다. 그것뿐인가. 지금 가고 있는 길 외에 다음에 가야 할 길도 알아봐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쫓아와 앞지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던 낯선 타향에 대한 조심스러움은 또 어땠는지.

그리하여 아내는 말했다. 이제 좀 쉬면서 하라고. 감기란 원래 사람에게 쉬었다가 가라는 하늘의 ‘사인’이라는 것이다. 지치고 힘들지만 도저히 쉴 수 없는 사람에게 하느님이 강제로 쉬게 하기 위한 명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며칠이나마 아무 생각 없이 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멈추거나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 장남이므로 무조건 모범을 보여야 했고 가난했기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였다.

과거 나는 감기 때문에 직장을 쉬거나 술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거짓 핑계라고 생각했다. 또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때로는 가진 것 많은 부자들 특유의 이기적인 엄살이라고 예단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부러 더욱더 감기몸살 따위를 우습게 생각했다. 오히려 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술자리에서는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마시듯’ 호기를 부리며 술을 마시기조차 하였다.

그런데 이제 일주일 이상 감기몸살로 끙끙 앓아보니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몸이 조금 나았을 때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겠노라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진 후 다시 몸 상태가 더 심해졌는데, 그때 이후 이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몇 년 만에 겨우 만나기로 한 지인의 약속조차 집안사라는 핑계를 대고 일주일 뒤로 미루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이기적인 엄살’에다가 ‘거짓 핑계’를 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심한 감기몸살로 뒤늦게 또 다른 철이 든 듯하였다. 모든 것을 내 입장과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던 것을 버리고 상대 입장과 기준으로 보게 된 것이다. 철이 든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이 원래 그렇듯 남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또 다른 생각이 가지를 쳤다. 요즘 같은 세상, 모두 힘들고 상처 입고 끙끙 앓는 세상. 그런데 우리는 아픈 사람을 이해하기는커녕 일방적으로 원인과 책임, 그리고 처방과 치료 모두를 그들 몫으로 떠넘겨 버리고, 우리는 모른 척 행복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픈 사람은 위로받지 못하고, 아픔은 치료받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해져 온 세상이 끙끙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감기몸살로.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조진범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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