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진계 대부 뜨거운 작품열정

  • 문순덕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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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2   |  발행일 2017-07-12 제13면   |  수정 2017-07-12
최계복 선생 작품 전시회
9월7일까지 칠곡 블루닷
지역 사진계 대부 뜨거운 작품열정
칠곡군 석적읍 블루닷에서 열리고 있는 최계복 사진전 모습.

대구·경북 사진계의 대부 최계복 선생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지난 4월에 시작돼 오는 9월7일까지 칠곡군 석적읍 블루닷(BLUE DOT)에서 열리고 있다. 지역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의 1930~40년대 사진 활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사진전을 권정태 대구사진작가협회장 등과 찾았다.

최계복 선생은 1909년 10월28일에 대구 종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구교남학교 재학 시절 미술에 재능을 보여 일본 교토로 유학을 떠났는데 미술가 문하에서 사숙을 하던 중 한국인에 대한 푸대접 등으로 견디기가 힘들어지면서 사진으로 전환했다. 그는 사진 기초부터 시작해 7년간 기술을 연마한 후 25세에 대구로 돌아와 종로1가에 ‘최계복 사진기점’ 간판을 내걸었다.

사진재료상을 운영하면서 사진 관련 정보를 제공하던 최 선생은 1934년 대구 사진동우회인 ‘사우회’를 결성했다. 사진공모전에 대한 정보와 경향을 동호인들과 공유하면서 출품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최초 작품은 1933년 ‘대구 영선못의 봄’이다.

1936년 4월 대구사진공모전에서 ‘춘풍’이라는 작품으로 입선했으며, 조선일보 주최 납량사진공모전에서 1938·1939년 연속 특선을 비롯해 수많은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최계복’이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광복 후 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다. 6·25전쟁 때는 종군사진기자로 피란민들에게 명함을 주면서 대구 자신의 집에 찾아오라고 해서 많은 피란민이 묵고 갈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1952년에는 평생 숙원이었던 한국사진예술학원을 설립, 후학을 배출하면서 사진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58년 서울로 가서 활동무대를 영화스틸사진으로 확장했던 그는 1960년대 미국으로 떠났다가 2002년 93세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끊임없는 사진 사랑은 대구 사진계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한국 사진계에 남긴 공로도 지대하다. 온몸으로 사진에 정진했던 선생의 열정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사진작가의 길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문순덕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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