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마이웨이 .1] 버섯 키우는 ‘젊은농부’ 임준기 해오름농장 대표

  • 이효설,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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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7 07:39  |  수정 2017-07-17 07:42  |  발행일 2017-07-17 제15면
“정부 지원 많은 농업은 블루오션…대기업 다니는 친구보다 더 많이 벌죠”
20170717
‘젊은농부’ 임준기 해오름농장 대표가 하우스에서 다 자란 새송이 버섯을 보여주고 있다. 임준기씨 가족이 농장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태블릿PC로 하우스 환경을 점검하는 모습(작은사진). 사진=이현덕기자 leehd@yeongnam.com

교육의 핵심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파악해 가장 행복한 일을 찾고,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부모의 출세 지상주의, 학교의 학벌 지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벌보다 실력, 부모의 재력보다 인성을 우선해 높이 평가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영남일보는 기획 시리즈 ‘JOB, 마이웨이’를 통해 입시경쟁에 허덕이는 학생들에게 출세보다 행복, 남의 시선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직업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가 소개하는 직업이 학부모와 청소년이 선망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행복을 찾은 직업인의 진솔한 이야기는 크고 작은 울림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버섯농사 시작하게 된 계기
세무사 수험생활 실패로 끝나고
고향에서 농사 배워야겠다 결심
버섯 몸통 다듬으며 스스로 터득
품질 인정받고 공판장 시세 1위

여전히 인기없는 직업 농부?
아직도 호미들고 밭 메는줄 오해
요즘은 앱으로 하우스 환경조절
하고 싶은 일 하니 당당하고 행복
남 따라가다간 계속 따라다녀야


“건물 앞 포터 94XX입니다. 내려오세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3일 오후 4시, 사무실에서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자, 건물 앞에 1t 트럭 한 대가 모터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서 있었다. 차량의 앞칸 문을 열고 간단한 인사를 건네며 올라탔다. 운전석에는 챙이 넓은 햇빛 가리개용 모자를 눌러쓴 임준기 해오름농장 대표(38)가 앉아 있었다. 경산시 압량면에 있는 농장에서 매일 북대구공판장을 들른다는 그에게 돌아갈 때 태워달라는 부탁을 한 터였다.

그는 젊은 농부다. 영남대에서 차량으로 5분 정도 이동하면 당음지라는 작은 못이 있는데, 그 옆 농장에서 아버지 때부터 20년째 새송이버섯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버섯을 재배하는 하우스가 여섯 동(800여평)이고, 여분의 땅에 여섯 동을 더 지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게 농장으로 가는 길, 그의 직업에 대해 인터뷰했다.

▶젊은 농부시네요.

“네. 우리 마을 청년 이장 나이가 50대니깐요. (웃음) 2013년 경북농민사관학교에 들어가 ‘버섯 마이스터과정’을 배웠는데, 당시에도 제가 가장 어렸어요.”

▶일찍부터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2년 3월쯤 서울 신림동에서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농장 하우스 절반이 불에 탔대요. 바로 경산 농장에 내려갔죠. 보험 처리하고 불에 탄 시설 정리하고 새로 짓는 데 1년 정도 걸리더라고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고 나서 친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어요. 아버지한테 ‘버섯 농사 배우겠다’고 했죠.”

그는 영남대(경제학과) 졸업 전부터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수험기간이 길어지면서 중간에 세무사 사무실에 취직해 일을 배웠지만, 처우가 나빴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자신이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았고,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형편이 어려워 5천500원짜리 순대국밥을 사흘동안 고민해 사 먹기도 했다.

그 후, 임 대표는 서울 수험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도통 농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버섯 몸통이나 다듬거라!”고 하실 뿐. 묵묵부답인 아버지 탓에 다 큰 아들은 하루 종일 작업장에 앉아 버섯 몸통에 묻은 흙이나 톱밥들을 칼로 툭툭 잘라냈다. 지루한 만큼 좀이 쑤셨다. “아버지, 일 좀 가르쳐주세요.” 아들은 대들었지만,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가 농사일을 포기시키려고 그런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1년 365일 만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다듬기만 했는데. 신기하더라고요. 매일 수확한 버섯 수백~수천 개를 보고 만지니까 어느샌가 버섯을 만져만봐도 잘 컸는지, 못 컸는지 알겠더라고요. 버섯 머리 밑에 비늘이 많거나 몸통 색이 누렇거나 목 부분이 졸려있으면 십중팔구 상태가 안 좋죠. 이렇게 하나씩 스스로 버섯에 대해 터득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누가 제가 키운 새송이버섯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잘 키웠네!’라고 칭찬해줬는데, 정말 성취감이 대단했죠.”

▶이 농장 새송이버섯 품질은 유명하다던데요.

“북대구공판장에서 시세로 1~4위는 모두 저희 농장 거예요. 단가가 최고로 높죠. 아버지가 혼자 할 때보다 품질이 더 좋아졌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십니다. 버섯은 예민해서 온도나 습도가 조금만 안 맞아도 금방 표가 나거든요.”

▶버섯을 어떻게 재배합니까.

“버섯 종균을 톱밥으로 채운 병에 넣고, 일정 온도와 습도에 두면 스스로 자라요. 비료를 주거나 특별한 관리를 안 해도 자라요. 종균에서 버섯 수확까지 18일 걸리니까 회전율이 빠른 농사죠. 하우스가 여섯동이니까 매일 수확을 할 수 있고요.”

▶재배방법이 비교적 간단하네요. 그래도 공부만 하다가 농사일, 힘들지 않으세요.

“아직도 ‘농사’ 하면 호미 들고 밭 메는 모습을 떠올려요. 그게 아니거든요. 스마트농법도 있고.”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농가환경관제시스템’이라고 적힌 앱을 보여줬다. 그 앱을 통해 하우스 내부 온도와 습도 등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는 “농장에 없을 때나 해외여행 갈 땐 이 앱으로 체크하면 돼요”라고 했다. 공판장에서 경매사가 버섯 가격을 매겨주는데, 그것도 실시간 앱으로 뜬다.

▶젊은이들이 농업을 하면 장점이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농업은 블루오션이잖아요. 안 먹고 살 수는 없죠. 그래서 정부에서 젊은 농업인들에게 이것저것 지원해주는 것이 많아요. 한마디로 대접을 받는 것 같아요. 농장 옆에 새로 하우스를 짓는다니까 이것도 지원금이 나온다고 했어요. 잘 키운 버섯을 수확할 때 짜릿하고, 그만큼 시세를 받으면 정말 행복하죠. 또 보통 직장인들보다 시간적으로 여유도 갖고 살아요. 아침 출근 때 맞는 바람·공기 이런 것들이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네요.(웃음)”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요.

“수작업은 수확하고 다듬고 포장하는 것 정돈데요. 그것보단 농사가 노력과 관계없이 성과가 결정되는 게 불안하죠. 잘 길러놨는데 시세가 내려가기도 하니까요. 또 농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절부절못하게 돼요.”

▶돈은 얼마나 벌죠.

“친구가 서울 유명 대기업 과장이에요. 한번은 월급 얘길 꺼내던데, 제가 좀 더 벌더라고요. 그보다 그 친구는 저를 만나면 제가 부럽대요. 고향에서 여유롭게 사는 거요.”

▶그래도 농부라는 직업이 여전히 인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네. 결혼할 때도 실감했어요. 아내 집에 첫인사를 갔는데, 장인어른이 대뜸 ‘자네가 우리 딸을 트럭에 태워 데려가는 걸 봤네!’ 하시면서 반대하셨죠.”

▶다 지난 일이네요. 그때 뭐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인어른, 저는 그 차로 농사짓고 돈을 법니다. 트럭이 부끄럽지 않고, 앞으로 큰돈을 벌어도 계속 탈 것 같습니다’라고 설득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장인어른을 설득할 자신감도 생기던데요.(웃음)”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쓰지 말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자. 남들 따라가다간 계속 따라다니기만 한다. 제가 경험으로 터득한 100% 팩트입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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