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4차 산업을 키운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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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8   |  발행일 2017-07-18 제31면   |  수정 2017-09-05
20170718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으랴마는 우리의 자식 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 자식 공부시키는 것은 물론, 장성한 자식 뒷바라지에 노후를 저당 잡히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자식의 장래를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해서는 곤란하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자칫 자식과 부모를 함께 망칠 수 있다. 자식은 단지 사랑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놓아두어야만 오히려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가정에서의 부모와 자식 간의 이러한 역학관계는 직장이나 나라 경영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옛날 임금이나 양반은 스스로를 불쌍한 백성들을 보살펴주고 이끌어줘야 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실상은 농민들은 지배의 대상이요, 착취의 대상이었지만 적어도 이념만은 내가 부모의 마음으로 너희들을 챙긴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풍토 탓일까. 경제운용에 있어서 정부는 스스로 특정 산업을 선정하여 키워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젖어있다. 기업들도 평소에는 간섭하지 마라, 다 알아서 하겠다고 외치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정부가 왜 챙겨주지 않느냐고 아우성이다. 이러한 행태는 우리 경제규모가 작고 폐쇄적인 체제 아래서 성공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가 어른이 되듯 경제규모가 커지고 대내외 환경이 변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과거의 성공경험이 오히려 오늘의 족쇄가 된다.

특정산업의 육성이나 개별 기업의 성장은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개별 기업의 흥망성쇠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굳이 시장경제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산업이나 기업은 스스로의 판단과 노력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절벽 끝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순간, 새끼 독수리는 자기가 날 수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특정 산업이나 특정 기술을 지정하여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들 산업에 공통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인프라를 깔아주고 공정한 경쟁 구조를 만들어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족하다. 목소리만 큰 좀비기업들이 시장에서 쉽게 퇴출될 수 있게 함으로써 건전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만큼 기업지원을 위한 제도나 조직이 잘 정비되어있는 나라도 없다. 그러나 정부를 향한 기업인들의 요구는 해가 갈수록 더해질 따름이다. 지원과 관심이 커질수록 기업의 창의성과 행동반경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스크린쿼터가 폐지되자 국산영화의 질이 몇 단계 높아진 것에서 보듯이 정부는 유능한 기업인들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이는 지역에서 전략산업이나 특화산업을 육성하는 경우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또다시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해 특정 기술이나 선도기업을 선정·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특정 산업, 특정 기업, 특정 기술을 지원하여 성공사례를 만들면 그 경험이 산업계 전체로 확대되어 갈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처럼 정부가 바뀔 때마다 특정 분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단기적 성과를 위해 노력했건만 그 결과는 미미했던 것이 그 예다. 기업환경과 기술발전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정부가 무슨 수로 모든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변화에 대한 예측이 어려울수록 집중화된 단일기관의 결정보다는 유연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주체들의 집단지성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개별기업이나 개별산업에 대한 일은 기업인에게 맡기고 정부는 다만 인프라 구축과 기업환경 개선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은경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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