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네 (아)저씨네] 아들의 연애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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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1   |  발행일 2017-07-21 제36면   |  수정 2017-07-21
[(아)줌마네 (아)저씨네] 아들의 연애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에서 집에 와있는 아들이 있다. 집에 내려오기 며칠 전부터 아들이 보내는 문자의 내용이 심상찮았는데 아들을 붙들고 자초지종을 물으니 ‘여친(여자친구)’이 생겼단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내려온다던 녀석이 하루이틀 날짜를 미루는 이유로 “동아리 일도 있고 다른 일도 좀 있어…”라며 말 끝을 흐릴 때부터 대충 알아봤다.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아들은 여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이니 연애를 해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 녀석에게 입학 1년 반 만에 꽤 괜찮은- 아들 말을 빌리자면- 여친이 찾아들었다.

집에 온 뒤로 아들은 늘 휴대전화만 만지락거렸다. “어디 전화올 때 있니”라고 물으면 “뉴스 좀 보려고요” 등 이유를 대고는 전화기에서 시선을 떼질 않는다. 그리고 밤만 되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원래 새벽 1~2시까지 잠 자지 않고 집안을 서성이던 아들이 밤 10~11시면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프니”라고 물었는데 아니란다. 그런데 집에 내려온 뒤 3~4일 뒤쯤이었다. 새벽 2시쯤 눈이 떠져 거실로 나가니 아들 방에 불이 켜져있었다. 불 끄는 것을 잊었나 싶어 보니 전화 중이었다. 여친과의 통화였다. 아들은 그렇게 하루에 2~3시간씩 여친과 전화를 한다. 나와는 몇분도 통화를 않던 아들이었다. 사귄 지 한 달여밖에 안됐으니 부모를 보기 위해 대구로 온 아들은 서울에 두고 온 여친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이게 부모의 자리구나, 이렇게 자식은 다른 인연을 만나 부모의 곁을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내가 정말 꽉찬 나이가 된 듯 했다. 아들이 대학에 가기 전만 해도 나는 아직 펄펄 뛰는 심장을 가진 젊은이인줄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들은 늘 바쁜 생활에 잊고 살던 나의 나이를 확인시켜주고 젊다는 착각에 빠진 나를 깨치게 한 일종의 알람이었다.

그래도 연애하는 아들이 사랑스럽다. 아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여친 이야기를 하고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곤 남편에게 우리도 예전에 저랬던가라며 아들의 연애를 화제삼아 이야기를 나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들처럼 알콩달콩한 연애를 하지 않았다. 남편도, 나도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애하니까 좋으니? 여친의 어떤 점이 좋지”라고 물으니 아들이 잠시 머뭇거리다 답한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세상에 가족 아닌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게 신기하고 행복해요.” 맞는 말이다. 가족은 내 편이기에 당연히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준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와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해준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어쩌면 연애하고 결혼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부부가 같이 산다는 것이 이래서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리고 아들은 이 사랑이 첫사랑이기 때문에 더 행복할 것이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첫사랑의 대상이 아름다워서라기보단 첫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의 순수했던 자기 모습 때문이라 한다. 첫사랑은 사회에 찌들어 살고 있을 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잠시나마 순수로의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

아들이 약간의 말다툼 끝에 여친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너가 화낼 때마다 내 가슴에는 못이 박힌다. 그래도 내 가슴에 박힌 못에 너의 사진을 건다.” 그러자 여친의 화가 풀리더란다. 부모는 자식으로 인해 못이 박힌 가슴에 자식의 사진을 건다는 것을 아들은 알고 있을까.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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