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강진만 8개 섬 중 유일한 유인도 ‘가우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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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1   |  발행일 2017-07-21 제38면   |  수정 2017-09-05
출렁다리와 집트랙…섬과 뭍을 맺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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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하게 14가구 32명이 거주하는 가우마을의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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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의 뛰어난 전망대의 하나인 영랑나루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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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 명물인 청자타워, 청자소원타일 2만3천여장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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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 섬 정상에 세워진 청자타워에서 바다를 가르는 공중하강시설 집 트랙.

남도 답사 1번지 강진은, 기쁨과 힐링을 두루 경험하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가우도로 가는 저두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보는 강진만은 환상적이며 로맨틱한 슈만의 서정 소곡 같다. 방금 지나온 대구면 일대는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려청자 골이다. 인류가 만든 그릇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그릇, 고려청자 가마터가 200여기나 된다는 이곳은 지형이 부드럽고 비취색 바다는 가을 하늘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마음이 흐뭇하고 취하게 된다. 강진만의 유일한 유인도이며, 향기의 섬으로 불리는 가우도가 성큼 다가선다. 다리의 중간에 투명유리로 만든 바닥이 있고, 거기에서 내려 보면 출렁거리는 해수면이 보인다고 출렁다리라고 하였다니, 그 발상이 너무 서정적이다.

가우도(駕牛島)는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이고, 이 섬의 생김새가 소의 멍에에 해당한다고 가우도라 하였다. 다리를 다 건너고 가우나루를 지난다. 섬 둘레에 데크 길이 있어 걷기가 좋다. 간간이 해변가로 내려가 걸어본다. 이 길도 저 길도 다 좋다. 곧 영랑나루 쉼터에 닿는다. 강진이 낳은 한국 서정시의 아이콘인 김영랑의 이름에서 따온 쉼터다. 제법 넓은 쉼터에 영랑의 동상이 앉아 있다. 주변에 영랑의 아름다운 서정시가 안내판에 진열되어 있다.

섬 생김새가 소의 멍에를 닮아 駕牛島
저두와 망호서 건너는 2개의 출렁다리
해안 ‘함께海’산책길과 영랑나루 쉼터
청잣빛 바다·하늘 한번에 즐기기에 딱

섬 정상의 높이 25m 전망대 청자타워
타워서 저두까지 공중하강체험 집트랙
바다 위에 떠있는 복합낚시공원도 名物


◆남도의 대표시인 김영랑의 시 세계

김소월과 김영랑은 북도와 남도의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소월이 북도의 질박한 사투리와 우리 민족 고유의 가락으로 시를 지었다면, 영랑은 착착 감겨 감칠맛이 나는 남도의 나긋나긋한 리듬이 속속 밴 탯말로 시를 쓴다. 전라도 탯말은 태어나기 전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배운 말을 말한다. 그것은 고향의 땅과 하늘, 바람과 햇볕 그리고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사투리에서 자라온 몸과 마음, 자신의 영혼이 녹아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탯말에는 우리 자신의 눈물과 정겨움, 살림살이의 애환 등 너무나 많은 울림이 들어 있다. 지금 이곳에 보이는 바다와 하늘, 나무와 꽃, 풀과 바람 모든 것이 남도의 탯말을 탄생시킨 환경이며 원소들이다. 이런 탯말은 전라도 사람들의 뛰어난 감성에서 연유하며, 유전자가 박힌 말이고, 늘어지는 장단이라서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김영랑의 시가 시공을 건너 빛을 발하고 불멸의 노래로, 우리 가슴에 악보로 남아 있는 것은 비단처럼 곱게 짜인 탯말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피와 살, 영혼을 이루고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무슨 꽃이라도 꽃만 보면 주술처럼 우리의 입술에서 살아나는 감성의 모란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원시를 보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 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 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은 꼿닙마져 시드러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쳐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젓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 슬픔의 봄을.”

여기서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는 이 작품의 키워드로 느껴진다. 못 이룰 사랑, 넘어서지 못하는 안타까운 세월, 인간 존재의 슬픔과 머나먼 여행 같은 것을 기다리는 그의 찬란한 슬픔의 봄은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원시로 읽어보면 시의 울림과 공명이 사뭇 깊어진다.

그의 ‘오매 단풍 들것네’를 낭송해 본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래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이 시에 나타나는 ‘오매 단풍 들것네’는 전라도의 탯말이 줄기가 되고 뻗어나가 잎과 꽃이 되어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오매’라는 말은 그 어떤 말로도 그 느낌을 나타낼 수 없는 전라도 탯말이다. “오매 어짜끄나.” “오매 나 죽것네.” 오매가 말을 살려내고, 말의 이미지를 시공으로 끌고 간다. 이 시의 리드미컬한 탯말 구사와 시청각적인 영상은 가히 환상적이다. 게다가 장독대 붉은 감잎 보고 놀란 듯 치어다보는 누이의 감정이 잦은 바람처럼 걱정되고 감칠맛 나게 녹아있다.

◆남도의 절경이 보석같이 빛나는 가우도 함께해(海) 길

다시 바다 갓길을 걷는다. 전혀 낯설지 않은 고향의 품처럼 포근하며 편안하다. 그 남도 영혼의 말이 보석처럼 빛나는, 김영랑의 시어들로 가득 널려 있는 자연의 신비 때문에 그런 걸까. 가우도 마을에 도착한다. 가우도 명물인 해상복합낚시공원이 청자 빛 물 위에 아름답게 떠 있다. 일일 사용료가 성인 1만원, 소인 5천원에 장비와 미끼는 대여해 준다.

가우도에서 강진군 도암면으로 갈 수 있는 망호 출렁다리를 건넌다. 강진 저두에서 가우도로, 가우도에서 강진 도암으로 갈 수 있는 두 개의 바다 위 출렁다리는 신과 인간의 솜씨가 섞인 감탄스러운 장관을 연출한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지 해풍이 세차다.

다리 난간에 다음 글귀가 붙어 있다. “Love Yourself More, 당신을 더 사랑하세요. 24시간 상담전화 1577-0199” 아마 자살을 예방하자는 의미의 글귀인 듯하다. 사람은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자기가 자기의 생명을 끊는 것은 자유지만, 가장 큰 죄악이다. 아랑곳없이 바다와 하늘은 하나의 청자 빛이다. 청자 빛은 순진무구하다. 청자 빛은 쟁여 놓은 감정을 물들이고, 저 김영랑의 시처럼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을 흐르게 한다.

건너간 다리를 다시 건너온다. 가우마을에 다시 들어선다. 강진만 8개 섬 가운데 유일하게 14가구 32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대숲 밑 정겨운 시골집의 장독대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오매 으짠디야, 장깡에 있는 오가리 속에 달이 빠졌어랑(아이고 어쩌나,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 속에 달이 빠졌어요).” 넘치는 감정을 혀에 감아 탯말을 중얼거려본다.

이제 산길을 따라 정상에 있는 청자타워에 도착한다. 고려청자매병의 상감과 비색의 신비를 재현한 높이 25m의 청자타워다. 청자타워에는 강진군민들의 꿈과 소망을 담은 청자소원타일 2만3천여장이 붙여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 일망무제 사방을 조망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뷰 포인트도 드물 것이다. 서로 두륜산 주작산 덕룡산 석문산과 서북으로 다산초당 백련사 만덕산 월출산, 서남으로 고금도 비래도 달마산이 보인다. 소뿔을 형상화한 두 다리의 교각에서 워낭소리를 듣는다. 모두가 절경이고 명산이며 명승지다.

청자타워에서 출발하는 집(zip) 트랙을 타기 위해 입구로 간다. 금일 강풍으로 체중 65㎏ 이상은 탈 수 없다고 한다. 몸무게가 초과되어 애석하지만 안내서만을 본다. 청자타워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대구면 저두마을 방면으로 내리는 공중 하강시설체험이다. 서로 다른 높이의 고정형 구조물에 와이어 로프를 설치하여 무동력으로 하늘을 날듯 활강하는 친환경 레저시설이다. 총 1㎞의 집 트랙은 3개 라인으로 세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오솔길로 해서 가우나루 입구로 나온다.

강진은 또 음악도시다. 오감통 음악인 연합회 주도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주요관광명소, 즉 가우도 저두, 망호 주차장과 영랑생가, 강진 버스터미널에서 관광객들의 흥을 돋우고 들썩이게 하는 버스킹(busking, 길거리 공연)을 한다. 포크송 리듬과 트로트 가락은 관광객들의 추억을 흥건히 적시고, 낭만과 신바람의 무대를 만든다. 오늘 가우도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버스킹은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에서 절정을 이룬다. 근데 누군가가 전라도 탯말로 야료를 한다. 머스마그와 가시나그가 물방애깐에 갔었다 하믄 다 끝나분 거제(사내와 계집애가 물방앗간에 갔었다고 하면 다 끝나버린 거지).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강진 대구면 주차장-저두출렁다리-가우나루-영랑나루 쉼터-가우도 마을식당-망호출렁다리-도암면 선착장-망호 출렁다리-가우마을-청자타워-가우나루-저두 출렁다리-대구면 주차장

▶내비게이션 주소: 강진군 대구면 청자로 1386-32

▶주위 볼거리: 강진 다원, 영랑생가, 무위사, 강진 오감통, 백련사, 다산초당

▶문의: 강진군 해양산림과 (061)430-3264, 가우도 협동조합 사무장 010-7732-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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