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작가의 기술, 독자의 기술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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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4 07:41  |  수정 2017-09-05 10:39  |  발행일 2017-07-24 제18면
20170724

“어렵다는 선입견을 좀 버려주세요. 어렵다는 말이 독자와 작가 간의 거리를 멀게 만듭니다. 외국의 소설을 봐도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읽으면 상당히 딱딱하고 눈에 잘 안 들어오죠. 그런 소설이라도 홍역 치르듯 한 번 읽고 또 읽다 보면 갈수록 눈에 들어오잖아요. 자신의 수준이 모르는 사이에 굉장히 높아지는 것이고요. 그런 고전과 문제작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문학 수준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쉬운 소설, 말랑말랑한 소설들만 읽어서는 문학이 도달하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가 없죠. 인류가 달성해 놓은 것들이 있는데 그걸 어렵다고 피하고 재미없다고 피하면 우리는 선인들이 이뤄놓은 것을 도저히 섭렵도 못 하고 관 속에 넣고 말아요. 그래서 어렵다는 것들도 한두 권만 독파하고 나면 그다음엔 좀 쉬워지고 나중에는 재미있어집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거죠. 그것은 노력을 통해 깨뜨려야 하는 건데, 누구에게나 그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고 봅니다.”(박상륭, 1999년 조선대학교 강연회)

“서양에는 긴 문장, 깊이 있는 문장, 복합체 문장들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그런 선배 작가들이 있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짧은 문장이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에게는 그런 긴 문장을 쓰는 배경이 없었으므로 먼저 긴 문장을 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작가들 중에는 짧은 문장을 잘 써 문장의 스타일리스트가 된 분도 있지만, 우리 일반인이나 학생들이라면 최소한 두 개의 문장을 한 문장으로 묶을 수 있는 문장력을 길러야 합니다. 문장 속에 여러 가지 뜻도 담아야 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생각하고 복합적으로 생각하려면 아무래도 문장이 길어져야 하지요. 또 문학은 역시 문학이라서 일반적으로 쓰는 구어체보다는 조금 더 깊이가 있거나 조금 더 나아야겠지요. 그런데 짧은 문장에만 익숙했던 독자들이 긴 문장을 만나면 당황하는 것 같아요. 노루가 뛰어가다가 무엇 때문에 뛰어가는지 잊어버리듯 문장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무엇을 읽었더라’ 처음의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식인데, 이것이 계속되면 우리의 뇌가 오래 생각하고 철학을 하기가 쉬워집니다.”(박상륭, 1999년 조선대학교 강연회)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 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里)로도 모인다.’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첫 문장)

누군가 종교가 무언지 물어올 때 저는 해도 믿고, 달도 믿고, 예수와 붓다 그리고 알라, 심지어 풀도, 벌레도, 돌도 다 믿는 다신교도라 대답합니다. 작가들 중에 ‘박상륭교도’들이 있는데 그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그분이 지난 1일 육신을 벗고 ‘열명길’로 떠났습니다.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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