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지금도 괜찮아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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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4 07:45  |  수정 2017-09-05 10:41  |  발행일 2017-07-24 제22면
20170724

며칠 전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약속한 미팅과 공부가 주 목적이었지만 보고 싶었던 공연과도 날짜가 잘 맞아 겸사겸사 며칠을 머물게 되었지요. 여름은 여름인지라 대구를 벗어났다고 해서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낮 일정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부지런히 공연장을 찾아다녔답니다. 서울에는 어떤 문화공간들이 있을까. 치열하고 치열하다는 이곳의 역량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은 어떨까. 어떤 신선함, 어떤 독특함이 있을까.

복합문화공간 ‘플랫폼창동61’을 들렀습니다. 이곳은 알록달록한 61개의 대형 컨테이너로 구성돼 있는데, 도시재생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때마침 재주 많은 두 소리꾼으로 구성된 ‘바투’의 ‘창동 악가무 Vol. 15 국악 버라이어티 투맨쇼-사라진 그림’도 볼 겸 하고 다녀왔답니다. 광복 직후 고국으로 돌아갈 열차만 기다리며 전재민 구호소에서 대기 중인 여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국립극단의 ‘1945’를 보러 명동예술극장에도 다녀왔고요. 배삼식 작가의 활동에 관심이 있었고 국악밴드 나릿도 창작국악극을 준비 중인 터라 눈여겨, 즐겁게 보고 왔답니다. 존경하는 연주단체인 ‘그림The林’의 시노래 콘서트 ‘초인공간’도 관람했습니다. 대학교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듣던 음악을 직접 본다니 잔뜩 기대가 되었고 ‘시노래’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냈을지도 무척 궁금했고. 역시 명불허전! 탄탄한 실력과 마음껏 공간을 지배하는 안정된 호흡과 깊이,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었답니다.

너무 좋은 시간들을 보낸 후, 묘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물론 새로움을 좇는 것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나는 이제껏 새로운 것만을 위한 고민에 매달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노력으로 충분할 것을 이대로는 안 된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채찍질로 나에게 상처를 내고 스스로를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쾌하고 열정적인 소리꾼의 땀방울, 제 위치에서 제 역할에 충실한 배우들이 만드는 하나 된 반짝임, 바위처럼 10여 년 그 자리를 지키는 연주자의 굳건함. 여느 예술가와 같이 특별할 것 없지만 분명 너무나 특별한 그 모습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지고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작국악연주단 ‘그림The林’의 ‘판 project 2’를 추천합니다. 드넓게 펼쳐지는 음악과 함께 잠시나마 스스로를 얽매는 것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지금도 괜찮다”라고 말해 보세요. 대구로 돌아온 필자도 수시로 심호흡하며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도닥입니다. 지금도 괜찮다고.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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