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IT 분야 정책 개선을 위한 건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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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6   |  발행일 2017-07-26 제30면   |  수정 2017-09-05
모든 전자서명에 효력 인증
‘공인’제도는 모두 폐기하고
피해구제제도 개선 필요
인터넷·IT 정부개입 중단
시장 자유로운 선택 맡겨야
20170726

문재인 대통령은 IT분야 ‘적폐’ 청산 방안의 하나로서 공인인증제도를 폐지하고 정부가 관리하는 웹사이트에서는 부가 프로그램(플러그인)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정부가 IT기술 분야에 깊숙이 개입하여 어쭙잖은 ‘선도 주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더 나은 경쟁 기술의 자유로운 시장 진입을 이런저런 핑계로 가로막아 온 불행한 역사는 한시바삐 청산되어야 한다. 이 분야의 시급한 개혁 과제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제시한다.

첫째, 세계 각국은 다양한 전자 서명 기술이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모든 전자 서명에 법적 효력을 대등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은 ‘공인 전자 서명’만이 법률상 서명 날인으로 인정받는다. 그 외의 전자 서명은 아무리 안전하고 편리해도 법률상 서명 날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오로지 사인 간에 사적 효력만 가지도록 규정한다. 이런 제도하에서는 공인인증기관이 선택한 기술만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다른 서명 기술은 활발하게 사용될 수 없다. 이런 사태가 서명 인증 기술 발전이나 전자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리 없다. ‘공인’ 업체들의 기득권과 사업 편의를 위하여 온국민의 희생이 강요되어온 대표적 적폐 사례다.

둘째, 전자 문서, 인증 서비스 등 인터넷과 IT산업 분야에서 정부가 업체를 심사하여 ‘공인’ 업체로 지정하고 이들 업체의 영업이나 홍보에 도움이 되도록 여러 제도적 특혜를 부여하는 ‘공인’ 제도는 이제 모두 폐기하는 것이 옳다. 공인 전자문서 센터, 공인 전자 주소, 공인 전자문서 중계자, 공인 인증 기관 등의 제도는 ‘안전’을 위해 정부의 감독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허울 좋은 논거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민간의 역량이 정부의 역량에 못 미치는 미개한 사회에서나 먹혀들 발상이며 민간 불신, 정부 맹신의 근거 없는 편견에 터잡은 논리에 불과하다.

사실 행정 관료에게 이러한 서비스의 안전을 점검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전문성이 있을 수 없다. 세계 각국은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개입하지 않아도(또는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전자 거래가 안전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공인’해 본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에서는 어느 특정 정부가 ‘공인’했다는 점이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 한국에서 판을 치는 ‘공인’ 제도는 인터넷의 작동 원리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일부 공무원들이 ‘안전’을 핑계로 사실상의 인허가권을 챙기려는 저열한 발상을 숨기고 있으며, 정부의 규제로 진입 장벽이 높아진 국내시장에서 과점의 이익을 누리는 사업자가 반기는 제도이다. 인터넷과 IT 분야의 국내 ‘공인’ 제도는 이제 모두 폐지하고 전세계 업체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하여 경쟁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주요 서비스의 안전은 진정한 전문성을 구비한 보안 점검 서비스 업체를 통하여 확보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셋째, 전자 금융 사고 거래로 인한 피해 구제가 신속, 철저하게 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매년 5천~8천건 정도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훤히 알고, 공격 방법 또한 잘 알면서도 그저 배상책임을 안 져도 된다는 이유로 여전히 같은 거래 기법을 사용하는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사고거래의 피해자가 사고 거래의 기술적 얼개를 소상히 알아내서 자신이 입은 손해가 접근매체의 위조로 인한 것인지, 전자적 신호의 전송이나 처리 과정 중에 발생한 것인지, 부당하게 입수한 접근매체로 인한 것인지를 밝히도록 강요하는 괴상한 규정을 두고 있다. 피해자에게 이렇게 까다로운 입증의 부담을 지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정부는 인터넷, IT 그리고 보안 기술 분야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고 시장의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에 맡기는 대신, 사고로 인한 피해가 신속하고 철저하게 배상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데 집중하기 바란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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