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안동 낙동강변 민속촌길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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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8   |  발행일 2017-07-28 제36면   |  수정 2017-09-05
물에 잠긴 골짝을 피해 모인 집들이 올망졸망
야산 까치구멍집·초가·와가·열녀비…
안동댐 수몰지 문화재 옮겨놓은 민속촌
몇몇 고택은 숙박·체험 시설로 활용돼
황포돛배 타는 민속박물관 앞 개목나루
원이엄마의 사랑 모티브로 한 월영교
산 중턱 석빙고·客舍 등 환상적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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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립민속박물관의 야외 박물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의 문화재들을 옮겨 왔다.

달골(月谷)이라 했다. 안동댐 근처 안동호 아래에 잠긴 마을의 이름은. 안동댐은 낙동강 수계 최초의 댐이다. 댐이 만든 호수는 우리나라 수돗물 전체 사용량의 7.4%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광대한 물이다. 물이 삼킨 골골마다 마을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안동시는 골짜기의 마을들이 호수에 잠기기 전 그 곳의 큰 집, 오래된 집, 특별한 집들을 물가로 옮겨 두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모인 집들은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안동 민속촌이라 부른다.

◆엄달곡의 민속촌

지금은 사라진 달골 옆에 음담골 혹은 엄달곡(嚴達谷)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안동댐 남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산이 높아 응달진 골짜기 마을이라 생긴 이름이다. 마을 야산의 좁고 가파른 골에 까치구멍집, 이춘백 초가, 이원모 와가, 통나무집, 연자방아, 권백종 정효각, 이천서씨 열녀비 등이 들어서 있다. 모두들 안동댐 수몰지역에 있던 문화재들이다.

댐 건설 당시 이곳은 민속 경관지로 조성되었다. 이후 민속박물관 건립이 논의되고 1992년 안동시립민속박물관이 개관되면서 민속 경관지는 야외 박물관이란 명칭을 달았다. 옥내 박물관은 유교문화를 주제로 지어졌다. 전시내용은 광범위한 유교문화를 한정된 공간에 전시하기 위해 아기 점지부터 어린이 성장과정까지 포함한 관혼상제로 축약했다.

2008년에는 안동지역에 산재해 있는 정자, 재사, 서원, 고택 등의 건축물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들은 골짜기의 가장 안쪽에 성문을 가진 일단의 마을이자 고건축 박물관이 되었다. 몇몇 고택들은 숙박시설과 체험시설 등으로 개조되어 있다. 꽁꽁 숨은 골짜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휘황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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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 원이 엄마의 지극한 사랑을 모티브로 만든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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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목나루. 원래 임청각 앞에 있었던 나루를 민속박물관 앞쪽에 복원해 놓았다.

◆민속촌길, 월영교와 원이엄마 테마길

안동시립박물관에서 하류로 약 650m 거리가 민속촌길이다. 강변을 따라 목재 데크길과 흙길이 나란히 나아가는 짧은 길이다. 민속촌길 끝에서부터는 안동호반 나들이길이 이어진다. 수변의 녹음 속을 걷는 2㎞ 넘는 긴 길이다. 자정까지 가로등이 켜져 있어 밤 산책 하는 이들이 많다.

민속박물관 광장 앞에는 황포돛배를 탈 수 있는 개목나루가 있다. 조선 선조 때의 기록에 나타나는 개목나루는 원래 이곳보다 하류인 임청각 앞에 있었다고 한다. 그 이름을 복원해 사람들과 가까이 둔 것이 지금의 개목나루겠다. 나루 지나 야외박물관 초입에 이육사의 ‘광야’ 시비가 있다. 문학 순례자들은 안동 도산면에 있는 육사 문학관에 가기 전 이곳에 꼭 들른다고 한다.

야외박물관으로의 입장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지나면 작은 연못이 펼쳐진다. 응달진 골짜기를 고스란히 제 속에 들인 연못이다. 연못 맞은편 관풍정 정자 뒤가 기와집이며 초가집이 골 따라 층층이 앉아 있는 야외박물관의 중심이다. 연자방아와 가마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월영교(月映橋)다.

월영, 달빛이 비추는 다리다. 10여년 전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원이 엄마를 기억하는지. 1998년 안동 정상동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미라에 가까운 시신의 머리맡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한 켤레가 놓여 있고, 가슴을 덮은 한지에는 편지글이 적혀 있었다. 먼저 떠난 남편의 저승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신발을 만들고, 원망과 그리움과 지극한 사랑을 담아 편지를 썼던 여인, 원이 엄마. 월영교는 원이 엄마의 사랑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다리다. 다리 가운데 팔각 월영정(月映亭)을 앉혀 두고 양쪽에 두 켤레 미투리가 서로 마주보는 형상이다. 불이 켜지는 달밤에 다리는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월영교 옆 수변은 ‘원이 엄마 테마길’이다. 길가 철망 벽에 작은 병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서로의 사랑을 담은 병, ‘상사병’이다. 벽 너머로 한 아이와 젊은 부부가 지나간다. 아이를 뒤쫓는 부부의 얼굴이 그대로 상사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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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엄마 테마길. 서로의 사랑을 담은 상사병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석빙고, 월영대, 객사

상사병들의 아우성이 끝나면 잠시 후 길 옆 야산으로 올라가는 좁고 긴 돌계단이 나온다. 계단 입구에 안동 석빙고와 선성현 객사 이정표가 서있다.

촘촘하게 쌓인 계단 끝이 환하다. 석빙고는 산 중턱의 환한 자리에 봉분처럼 자리한다. 보물 제305호인 석빙고는 원래 예안면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 현감 이매신(李梅臣)이 녹봉을 털어 석빙고를 지었다고 전한다. 석빙고 입구에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이 달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내부에 불이 확 켜지면서 정교한 돌의 짜임을 보여준다. 얼굴이 시원해진다. 석빙고는 왕에게 진상했던 은어를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석빙고 왼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조금 가면 월영대(月映臺) 바윗돌과 선성현 객사가 있다. 모두 안동댐 건설 때 옮겨진 것이다. 월영대는 월곡면 사월리가 원래 자리다. 그곳 야트막한 산자락의 소나무 숲에 금하재(錦下齋)란 정자가 있었는데 월계 권공(月溪 權公)이란 분이 시를 읊조리던 곳이었다 한다. 권공의 사후 그의 후손 병한(丙漢)이 선조의 자취를 남기기 위해 긴 암벽을 다듬어 새긴 것이 월영대 각자다. 월영대란 ‘달이 비치는 대(臺)’란 뜻이다. 원 자리는 아니라 해도, 월영대는 꼭 제자리를 찾아온 느낌이 든다.

금하재 대신 객사라 하면 실례일까. 그러나 월영대와 선성현 객사 건물은 참 잘 어울린다. 선성현은 예안의 옛 이름이다. 석빙고가 있었던 예안과 같은 곳이다. 객사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숙종 때인 1712년에 현감 김성유(金聖遊)가 고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월영교에서 바라보면 새집 같은 산중턱에 새처럼 멋있게 앉은 객사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객사에서도 월영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달맞이하기에 더 없이 호적하고 근사한 자리렷다. 달은, 달골에서 떠오를 테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에서 내린다. 시청 방향 5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해 안동문화관광단지 이정표를 따른다. 관광단지 도착 전 왼쪽에 안동시립민속박물관으로 가는 언덕길로 좌회전하면 민속촌 전체를 가로질러 낙동강변에 닿을 수 있다. 5번 국도에서 영호대교 넘어 우회전해 강변도로를 따라 안동댐방향으로 가면 월영교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월영교 분수는 11월5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하루 3회(12:30, 18:30, 20:30) 20분간 가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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