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택시운전사’ 만섭役 송강호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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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8   |  발행일 2017-07-28 제43면   |  수정 2017-09-05
“배우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 늘 고민…이번엔 인간의 도리”
20170728

배우 송강호는 시나리오를 받고 하루이틀 만에 출연 결정을 내리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고민을 거듭한 작품이 있다. 바로 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과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두 작품 모두 근현대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다뤘다. 그 이유만으로 제작 단계부터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받았다. 실존인물에 누가 되진 않을까, 송강호가 이를 연기해도 될 그릇의 인물인가. 여러 고민이 송강호의 머리와 가슴을 스쳐갔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작품이 지닌 따뜻함에, 긴 고민을 끝내고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8월2일 개봉을 앞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세계로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우연히 돕게 된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영화는 실화를 토대로 택시기사 만섭(송강호)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담아낸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다룬 영화
외신기자를 태운 택시기사 실화 모티브
“시대 아픔 넘어선 희망이 영화의 핵심”

“정치적 고려로 작품을 선택하진 않아
처음 출연 고사한 건 작품 무게감 때문”
‘20년 지기’ 유해진과 첫 호흡 더 각별



총성이 오가던 1980년 5월을 스크린으로 소환한 ‘택시운전사’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광주 민주화를 취재하는 독일기자 피터, 그를 태우고 가는 택시기사 만섭, 푸근한 정이 넘치는 택시기사 태술(유해진), 광주 대학생 재식(류준열). 모두 양심과 상식, 인간의 도리에 충실한 인물들이다. 그중에서도 등장만으로 스크린에 온기를 불어넣는 송강호의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그는 광주의 참혹한 모습 앞에서 오열하는, 인간된 도리로 택시 운전대를 잡고 그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모습을 진심이 담긴 연기로 표현했다.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집중한 것은 뭔가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소재가 처음은 아니잖아요. 문학 작품에서도 당시 아픔을 많이 묘사했습니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택시운전사’가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까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보여줘야 할 걸 안 보여주고, 안 보여줘도 될 것을 보여주고의 문제는 아니었죠. 더 나아가 시대의 아픔과 함께 광주 시민들과 우리가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왔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우리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희망’이고요. 영화에서 만섭의 행동은 정치적 사상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 때문이잖아요. 희망, 인간의 도리가 관객들의 감성을 지배하길 바랐습니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소시민에 대한 기대치가 높습니다. 기존 작품 속 캐릭터와의 차별점은 뭘까요.

“만섭은 정말 평범한 소시민이죠. 데모하는 학생들을 꾸짖는 것도 그저 공부 열심히 해야 할 나이에 거리에 나와 있으니 하는 얘긴 거죠. 그런 보편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평범한 인물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뛰어들 때에는 얼마나 큰 분노와 슬픔,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후반부에서 이러한 무게감을 그렸다면, 영화 초반에서는 개구쟁이처럼 보이길 바랐습니다. 만섭은 아내 없이 딸아이를 곤궁하게 키우는 인물입니다. 10만원에 혹해서 광주까지 내려가는데, 그 모습을 개구쟁이처럼 그리길 바랐습니다.”

▶처음에는 출연을 한 번 거절했다 들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습니다. 저는 출연을 하든, 안 하든 답변을 빨리 하는 성격이에요. ‘택시운전사’는 거절하긴 했는데 마음에 얘기가 커져가는 것이죠.”

▶마음의 크기가 커진 이유는 뭘까요.

“‘변호인’ 하고 비슷한데요. ‘변호인’ 때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많은 분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습니다. ‘택시운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현대사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을까가 부담이었죠. 그런데 마음에 들어온 시나리오가 하루이틀 만에 없어지진 않더라고요. 뜨거움 같은 것이 점점 커졌습니다. ‘변호인’ 때도 그랬습니다.”

▶‘효자동 이발사’ ‘변호인’ ‘택시운전사’까지. 필모그래피에 유독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

“연극배우 시절에도 제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어떻게 연기를 잘할 것인가’였어요. 그다음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였죠. 그 지점이 평생 배우 송강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메시지나 함의를 가진 작품, 이를 발언하는 작품만을 특별히 선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나름 의미있는 작품과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항상 충실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런 제 선택이 최근 일련의 강력한 사회적 발언, 사건과 맞물렸을 뿐이죠. 배우 송강호로서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제 다음 작품은 ‘마약왕’입니다.”(좌중폭소)

▶‘변호인’ 이후로 지난 정권 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택시운전사’를 선택하는 데 위축되진 않았나요.

“우려하는 지점은 분명 있었죠.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받는 불이익이란 게 드러나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제가 있다면 극복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이슈가 결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의지나 소신을 꺾진 못합니다. 단지 조금 위축은 되겠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권이 바뀔 걸 기대하고 촬영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메시지를 전하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나였죠. 아무리 엄혹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진심은 전해질 것이라 생각했죠. ‘변호인’이 그걸 증명했고, 이상적인 환경으로(정권이) 많이 바뀌었죠.”

▶‘택시운전사’가 유해진과 송강호의 첫 만남이라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그러니까요. 와, (유)해진이랑은 20년 넘는 인연인데 어떻게 한 작품도 못 했을까. 한 10년 전인가 영화 세트장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해진이가 ‘형 영화에 제가 출연 못하게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투덜거려서 엄청 웃었죠. 술 한 잔 할 때마다 꼭 작품 같이 하자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작품으로는 인연이 안 닿았습니다. 서로 정말 좋아하는 사이예요. 그래서 ‘택시운전사’가 더 각별한 것 같습니다.”

▶류준열은 어땠나요.

“류준열은 tvN ‘응답하라 1988’을 보고 팬이 됐어요. 사실 눈매가 날카로워서 까칠할 것 같단 선입견이 있었는데 성격이 그렇게 밝을 줄 몰랐습니다. 정말 잘해요.”

▶엄태구가 등장할 땐 절로 ‘밀정’ 생각이 났습니다.

“‘밀정’ 개봉 즈음이었나, 장훈 감독과 대화 중에 엄태구 얘기가 나왔어요. 연기 정말 잘한다고, 정말 좋다고. 한참 뒤에 장훈 감독이 중사 역에 수많은 배우 오디션을 봤는데 딱 맞는 배우를 못 찾았다고 했죠. 때마침 제가 엄태구를 칭찬한 게 생각나서 불러봤는데 중사 역에 제격이었습니다. 추천이면 추천인데 반추천이죠. 정말 잘했죠, 엄태구. 제가 제작자한테 ‘우리 영화 주인공은 엄태구’라고 했을 정도니.(웃음)”

▶연극을 1989년에 시작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배우로서 목표하는 지향점이 점점 구체화된 것 같은데요.

“오히려 지향점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왜냐하면 ‘변호인’이든 ‘택시운전사’든 나름대로 어떤 의미있는 목표를 관통했기 때문이죠. 이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택시운전사’ 속 대부분의 인물이 착하게 그려집니다.

“그게 바로 딜레마인데 당시 광주시민들이 다 그랬어요. 광주 시내를 통틀어 절도사건이 한 건도 없었답니다. 기름도 다 공짜로 주고. 택시운전사들도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그러니 일부러 다양하게 인간군상을 만들려고 해도 그게 안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영화적 재미를 위해 당시의 순수한 마음을 왜곡할 순 없잖아요.”

▶연기하며 울컥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많았는데 아무래도 금남로 장면이죠. 영화에 총 쏘는 장면이 두 번 나오고 군인들이 시민을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하(한숨), 총 쏘는 장면보다 더 세게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영화 촬영이지만 그 모습을 목도한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죠. 무겁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엔딩 무렵 만섭은 광화문으로 향합니다. 촛불 민심을 반영한 장면으로 봐도 될까요.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데 우연의 일치예요. 촬영이 끝난 뒤 광화문 촛불 민심이 등장했습니다. 꼭 상징적으로 광화문을 넣은 건 아니고 다만 서울을 대표하는 장소이니까 넣은 거죠. 원래는 홍대나 강남으로 할까도 고민했죠.”

글=TV리포트 김수정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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