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난중일기’서 배우는 일상의 소중함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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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31 07:54  |  수정 2017-07-31 07:55  |  발행일 2017-07-31 제18면
“부모·자녀 함께 방학일기 적으며 소통의 다리 만들어요”
20170731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학생들은 기다리던 방학을 맞아 팽팽하게 긴장했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예전엔 방학마다 행해지던 일기쓰기라는 과제가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방학숙제 대목에서 사라진 지 꽤 되었습니다. 방학 초기에 꼬박꼬박 쓰던 일기가 방학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날씨가 비가 왔는지 맑았는지를 물어가며 반복되던 일상을 이리저리 꿰매어 적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방학 숙제 덕분에 특별한 일이 있던 날은 삐뚤삐뚤하지만 제법 상세하게 적었던 기억이 나고, 그날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은 적이 있는지요?

일기는 무심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마음의 굴곡을 적지만 훗날엔 그날의 삶을 소중한 추억상자에 알록달록하게 담게 됩니다. 방학을 시작하면서 부모와 자녀가 방학을 보람 있게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난중일기’를 펼쳤습니다. 난중일기는 한문으로 된 것을 수많은 분이 여러 차례 고심한 끝에 번역함으로써 역사적인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헤쳐나간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순신 난중일기 통해 그 시대와 호흡
그날의 있었던 일·만난 사람·생각…
역사적 중요한 가치 지니고 빛 발해
학창시절 내면의 기록…소중한 자산



난중일기는 임진일기(1592)부터 무술일기(1598)까지 7년간의 일기로 특별한 일 없는 한, 거의 매일 쓰고, 바쁜 날에는 날씨라도 적었고, 틈나는 대로 적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일상생활, 동료·친척과의 왕래, 집안일, 수군의 통제에 관한 비책, 나라에 대한 남다른 충정, 불의에 대한 원통함 등이 간결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일상을 통해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처절한 슬픔을 만나게 되고, 전쟁 중에 마음이 통하는 이에 대한 신뢰감, 모함하는 이에 대한 차가운 비웃음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일상이 전쟁의 치열한 현장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읽어가노라면 광화문에 우뚝 선 동상의 차가운 모습보다 나라의 형편을 걱정하며 백의종군하는 외로운 인간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임진년 5월1일 ‘수군들이 모두 본영 앞바다에 모였다. 날씨가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고 남풍만 세게 불었다. 진해루에 앉아서 흥양 현감 배흥립, 녹도 만호 정운 등을 불러들였다. 왜적들의 침입 소식에 모두들 어찌나 분해하는지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칠 태세였다. 진정 의로운 사람들이라 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부하들의 충정에 대한 지도자로서 뜨거운 감동이 진하게 전해옵니다. 정유년 4월19일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 앞에 하직을 고하고 울며 부르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 같은 사정 또 어디 있을 것이랴. 어서 죽은 것만 같지 못하구나’에서는 주먹으로 흐르는 눈물을 꾹꾹 찍어 누르는 아들의 애끊은 마음이 절절히 사무칩니다. 진솔하게 써내려간 짤막한 문장에 담긴 이순신의 마음이 굵직하게 다가와서 문을 쿵쿵 두드리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온갖 계략의 난무 속에서 모함의 덫에 걸려 옥살이를 하고 나왔을 때 ‘감옥에서 나왔다’는 문장이 주는 해방감에서 그간의 수모가 찌르르 전달됩니다.

전쟁 중에 일기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한 줄 한 줄 적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학생 시절을 적으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일입니다. 난중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인물의 삶을 만나고 지도자로서의 고독,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가슴을 후벼파는 아비의 적나라한 모습을 만납니다. 난중일기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와 호흡하고, 이순신과도 우리가 이 시대를 품고 소통하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을 성실히 적으며 부모와 자녀의 소통의 문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오프라 윈프리가 그녀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와 감사일기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매일매일 하루에 다섯 가지 감사한 것에 대해서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이순신도 그날 있었던 일, 만났던 사람, 일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 등을 적어두었는데, 그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고, 오늘날에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매일의 삶을 적는다는 것은 훗날의 개인적인 삶을 돌아볼 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제 방학을 맞아 스스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일기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자녀들이 일기를 쓰려면, 먼저 부모님이 공책 한 권을 사서 시작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개학이 되면 모두 정신없이 바쁘니까 이번 방학에는 부모와 자녀 모두가 각자 자신과 소통하는 방학 일기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그것으로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는 자녀의 생각을 알아서 일기가 소통의 다리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이제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전엔 일기쓰기가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지시하는 숙제였다면, 이제는 자녀와 소통하는 문으로서 자원하는 방학숙제를 해보면 어떨까요.

원미옥<대구 구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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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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