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기업 간담회’에 없었던 두 가지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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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31   |  발행일 2017-07-31 제30면   |  수정 2017-07-31
권력과 재벌의 첫만남에서
박근혜정부 허문 정경유착
超대기업 증세논란은 빼고
격식파괴만 돋보인 靑회동
뭐가 허심탄회했다는 건가
[송국건정치칼럼] ‘대기업 간담회’에 없었던 두 가지

지난주 두 차례에 걸친 문재인 대통령과 대기업 CEO들의 청와대 회동은 ‘형식’이 ‘내용’을 압도한 간담회였다. 공식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녹지원에서 스탠딩 호프타임(1차)과 칵테일타임(2차)을 갖고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가 안주를 준비했다. 문 대통령은 CEO별로 맞춤형 인사말을 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청와대는 시나리오, 발표 자료, 발언 순서, 시간 제한 없는 ‘4무(無) 간담회’라고 했다. 초청된 15개 대기업에, 재계 서열 100위권 밖의 ‘착한기업’ 오뚜기식품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의 뒷얘기가 담긴 ‘청와대의 손님맞이·대통령과 기업인들의 상춘재 호프미팅’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뜻깊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드린다. 기업의 입장과 현안들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며 소통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SNS에 적었다. 이번 간담회도 공연예술기획가인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행사기획담당 선임행정관의 작품이라고 한다.

파격적인 형식을 취한 건 일단 잘한 일이다. 과거처럼 새 정권이 초기에 재벌의 군기를 잡는 것 같은 행태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형식에 비해 내용이 너무 없었다. 기업별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서비스산업 육성, 4차 산업혁명 관련 규제 완화, 주요 장비업체 지원 같은 제안들이 나왔지만 청와대나 기업인들 모두 본질은 비켜갔다. 문재인정부 탄생의 밑거름은 촛불 민심이었다. 촛불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이를 막지 못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 때문에 타올랐다. 시발점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대기업 출연금 강제모금 의혹이었다. 이후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정부가 돕는 대가로 정유라씨의 승마를 지원했다고 해서 뇌물죄 혐의로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정전자 부회장 등이 구속된 상태다. 2차 간담회에는 특검의 수사를 받은 삼성(권오현 부회장), SK(최태원 회장), 롯데(신동빈 회장), KT(황창규 회장)의 오너와 CEO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신동빈 회장은 당일 법원의 배려로 재판을 일찍 끝내고 참석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해체 위기에 몰린 전경련의 허창수 회장도 GS그룹 대표 자격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는데 연루된 재벌기업의 행태에 대한 반성이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자는 다짐 정도는 있었어야 했다. 아무리 상견례 자리라고 해도 어렵게 마련된 모임의 시점을 생각할 때 본질적인 핵심을 일부러 피해간 건 이해하기 어렵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개혁 전도사’를 자처한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재벌개혁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재벌개혁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법령 개정을 통한 제도적 해결을 추진하는 등 민주주의 틀 내에서 가능한 모든 정책적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간담회에서 웨이터처럼 맥주를 날랐을 뿐 재벌개혁과 관련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대기업들도 몸을 사렸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연간 영업이익 2천억원 이상 초(超)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증세를 추진하고 있지만 모두가 이에 해당되는 간담회 참석 CEO들은 입을 떼지 않았다. 내부적으론 지금도 상위 1% 초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76%를 부담하고 있는데, 또 세금을 올리면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불만이 팽배하면서도 침묵했다. 문재인정부의 1호 공약인 일자리 창출과 핵심 공약인 재벌개혁은 시행하다 보면 서로 충돌하는 측면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1·2차 간담회를 통해 그런 내용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으면 파격적인 형식도 더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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