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마른 말은 청백리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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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1   |  발행일 2017-08-01 제31면   |  수정 2017-08-01
[CEO 칼럼] 마른 말은 청백리의 표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馬)은 다양한 상징을 가진 그림의 소재가 되어 왔고, 그 시작은 문자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자가 없어 그림으로 사람들의 열망을 표현했던 구석기 시대의 동굴 속 말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비대하게 그려져 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 표현된 말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말을 식량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더 크고 살찐 말을 포획하고 싶은 염원을 과장된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동양은 기원 전후 무렵부터 우주목(宇宙木)이라 불리는 나무에 매여 있는 말 도상이 고분벽화로 다수 발견된다. 이 ‘말’은 단순한 인간의 먹잇감이 아니라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승용마로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영험한 존재다. 고대 국가의 건국신화나 전설에 언급되는 천마(天馬)나 신마(神馬)처럼 말을 신과 동등하거나 함께하는 초월적 존재로 숭상했던 흔적이라 볼 수 있다.

주(周)나라 목왕이 말 여덟 마리와 함께 신들이 사는 곤륜산(崑崙山)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팔준도’ 제작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많은 왕과 황제가 이를 규범으로 삼아 팔준, 육준, 십이준 등 각기 고유의 이름을 가진 명마들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남겨 권위를 세우고자 했다.

말 그림에서 많이 보이는 유형의 하나는 말을 인간 중에서도 신하 혹은 관리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일상생활의 이동수단이자 전쟁터에서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운명공동체였던 말은 옛 문인들에게 멋진 은유의 대상이었다. 절대 권력자인 왕의 곁에 평생 머물고 싶다는 자신의 충성심을 드러내는 매개체로 최적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말을 씻기는 그림은 관리로서의 자질을 갈고닦는 것이고, 나무 아래 붉은 줄로 묶여 있는 준마의 그림은 충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된다.

온몸의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여윈 모습의 말 그림, 수마도(瘦馬圖)도 있다. 때로는 마른 말과 살찐 말 두 마리를 대비시켜 그린 경우도 있다. 말이야말로 적당하게 살이 올라야 아름다운 동물이고, 이를 그림으로 옮겼을 때도 감상하기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야위고 볼품없게 그린 이유는 마른 말이 강직하고 청렴한 신하를, 살찐 말은 탐욕스럽고 부패한 신하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수마도’ 중에는 마체의 골격이나 동작이 어색하게 그려진 것이 많다. 이것은 전문 화원이 아닌 문인 스스로가 청백리로서의 마음가짐을 되새기고자 직접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공직자의 다수가 문인이던 시기, 스스로가 평소 ‘수마도’를 그리며 청렴하고자 노력했던 조상들의 자세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렴한 대한민국을 위해 지난해 발효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청렴’은 이제 필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공사(公私) 생활을 불문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일처리는 우리의 삶의 질과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조건인 것이다. 옛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 여러분의 집이나 사무실에 ‘수마도’ 한 폭쯤 걸어두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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