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규모 빚 탕감,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 대책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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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4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정부가 마련한 대규모 빚탕감 대책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빚에 시달리는 금융 취약계층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자칫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빚 탕감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돼 온 대표적인 포퓰리즘성 정책이긴 하지만, 이번엔 탕감 규모가 역대 최대여서 더욱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장기소액연체채권 정리 대책은 파격적이다. 이달 말까지 국민행복기금과 6개 금융공기업이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21조7천억원어치를 일괄 소각하고,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4조원어치도 소각토록 권고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연체 발생일로부터 5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료된 214만3천명의 채무기록이 전산과 서류에서 삭제돼 금융거래가 다시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빚탕감이 서민을 위한 ‘포용적 금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하는데, 물론 그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상법상으론 연체한지 5년이 지나면 돈 갚을 의무가 없다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어서 채무자가 겪는 고통이 큰 게 사실이다. 금융사는 법원의 지급명령을 통해 채권 소멸 시효를 10년 단위로 계속 연장하고, 또 대부업체들은 시효가 끝난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연체이자까지 덤터기 씌워 추심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금융기관의 편법으로 인해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규모 빚 탕감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무엇보다 도덕적 해이 우려가 팽배하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만연해질 수 있다. 또한 이는 비슷한 처지에서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 나가는 채무자와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실제로 이미 국민행복기금과 약정을 체결해 빚을 갚고 있는 채무자가 44만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려면 무엇보다 빚 탕감 대상자에 대한 상환능력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다시 말해 정말 형편이 안돼 못 갚는 경우와 재산을 숨기고 안 갚는 경우를 철저히 가려내 절박한 처지의 채무자만 지원하는 ‘핀셋 탕감’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취약계층이 채무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민 정책 금융의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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